서평 - 빅맥이냐 김치냐
:: 김민수
자유북한방송 기자



들어가며

“중국에서 나비가 날개 짓을 하자 미국에 폭풍이 불었다.” 영화 ‘나비효과(The Butterfly Effect)’의 도입부 자막이다. 나비효과는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Edward Lorentz)가 1961년 기상관측을 하다가 생각해 낸 원리로 이후 카오스 이론으로 발전해 여러 학문 연구에 쓰이고 있다.

‘나비효과’ 이론은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요즘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이를테면 1997년에 일어난 타이 화폐의 평가절하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필리핀, 한국으로 확산되었고 러시아와 터키로 전염됐으며, 아르헨티나 경제를 붕괴시켰으며 이후 이웃인 우루과이 경제까지 무너뜨렸다. 개별 국가의 금융위기가 세계적으로 확산된 것은 자본과 무역의 흐름,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노동시장의 이동 등에서 상호 연관성의 증가로 각 나라들의 운명을 서로 연결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세계화, 특히 통신수단과 교통의 발달이 ‘나비효과’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세계화가 서둘러 진행되던 초창기, 이를 지지했던 기업과 국가(주로 서방국가들)들은 ‘국제시장의 성장으로 세계시장이 하나로 통합되고, 개별 국가들은 국경을 넘어 무역과 교류를 함으로써 하나의 공동체로 묶여 다같이 번영을 누리게 될 것’으로 낙관했다. 하지만 이들은 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되면 될수록 개별 국가의 정치·경제적인 문제가 세계시장과 국제사회의 안정과 안보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커진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재정정책, 인도네시아의 부정부패, 사우디아라비아의 안정성과 같이 소규모이고 국지적인 것들의 중요성이 갑자기 너무 커져버렸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지만 단 한 번의 마우스 클릭이나 항공기 탑승 등으로 그 여파는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이 책은 이러한 작은 주제들을 통해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환경 속에서 세계시장과 국가경제, 국제사회의 안정과 안보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지역정치를 이해하고 예측하는 틀을 제공하고 있다.

독자들은 ‘빅맥과 김치’를 통해 개별 국가의 정치적 역동성을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울 수 있으며 번영과 발전을 위해 국가가 갖추어야 할 요소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국가의 위기가 몰고 오는 세계적 파도

1) 필리핀의 부정부패

1984년, 마르코스家는 300개 기업의 이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마르코스의 친구 중 하나인 베네딕토는 국립 설탕유통회사, 필리핀 설탕관리국, 설탕산업을 지원하는 2개 은행의 주인이 되었다. 동시에 그는 적어도 다섯 개의 통신업체에 관여했다. 마르코스는 이렇게 소수집단에게 특혜를 주면서 정권을 유지하려 했지만 이러한 집단에서 제외된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었다. 마르코스 정권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중산층, 반대파 정치인, 정부 관계자와 혈연, 지연, 학연이 없어 대출을 받지 못한 기업인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이들의 저항은 시간이 흐를수록 거세졌다. 정치적 불안이 필리핀을 휩쓸었다. 정권유지에 불안을 느낀 마르코스는 1986년 선거를 18개월이나 앞당겨 실시했고, 뇌물공세, 투표조작 등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결국 마르코스는 국민적 저항에 부딪쳐 아내와 측근 몇 명만을 데리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

마르코스 정권이 무너지자 외국기업들은 필리핀의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전력을 다했다. 대표적인 기업으로 미국의 전력회사인 웨스팅하우스(루존 섬에 10년 동안 21억 달러를 투입해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한 기업)가 있는데, 이 회사는 “뇌물을 통해 심각한 안전상의 문제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마르코스가 계약을 맺게 했다”는 소송에 걸려 필리핀에 4,000만 달러의 자금과 6,000만 달러 상당의 발전시설을 제공하기로 합의해야 했다. 웨스팅하우스는 부정부패의 정치적 영향력을 의심했고, 부패가 계속 유지 가능한 현상이라고 믿었으며, 또는 이것이 외국기업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2) 이집트의 사회변동

경제적인 세계화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현대화는 인류에게 막대한 혜택을 주지만 불가피하게 사회변동을 동반한다. 사회변동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손상을 일으키고 이것은 분노와 혼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정부가 이들의 불만을 부의 증가로 보상해 주지 못하면 국민들은 불만을 강력한 정치적 역동성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집트의 나세르는 급격한 사회변동과정에서 생긴 국민들의 불만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흡수되지 못한 이집트 국민들의 불만은 테러, 기독교인 위협, 폭동, 외국인 관광객 위협 및 살해, 외국제품 보이콧 선동 등으로 표출됐다.

1952년 압둘 나세르는 이집트에서 권력을 잡았다. 그는 뒤떨어진 자신의 조국을 급격히 강대국 대열로 끌어올리기 위해 이집트의 현대화를 계획했다. 대담한 토지개혁으로 봉건적인 구조를 일시에 무너뜨리는 등 개혁을 추진했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했다. 토지개혁은 농부들을 도시로 몰려들게 했다. 엄청난 속도와 대규모로 이루어진 도시화 현상으로 작은 도시들은 수십 년 사이에 대도시가 되었고 200만 명이던 카이로의 인구도 1,800만 명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급격한 도시화는 이집트에 재앙을 가져왔고, 빈부격차, 가족파괴, 실업, 주택문제, 교육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도시로 몰려든 수백만 이집트인들에게 현대화는 분열과 새로운 형태의 비참함 그리고 사라져 가는 기회를 의미할 뿐이었다. 현대화 과정에서 낙오된 사람들과 빠른 변화 속도에 놀란 사람들은 이슬람교 사원으로 떼지어 몰려들었다. 회당과 학교와 자선단체 등의 도시조직이 있는 이슬람교는 빠르게 사람들을 조직했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이슬람교는 가난한 이집트인에게 현재의 고통을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설명했다. 그들이 말한 적은 서방세계와 동맹을 맺은 정부와 서구식의 의상을 받아들인 이집트의 신흥부자들과 이집트의 숙적인 이스라엘이었다. 이슬람교도들로 변한 국민들은 자신들에게 고통을 가져다 준 사람들을 벌하기 위해 폭력적으로 변했다. 이 중에는 알 카에다 조직의 고위직까지 올라간 사람도 있었다. 나세르가 꿈꾸었던, 비종교적이고 사회주의적으로 현대화된 이집트는 예상치 못한 사회변동에 대처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이슬람교적인 이집트가 되고 말았다.


불만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

국민들의 불만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국가들은 고통은 따르지만 반드시 실시해야 할 경제개혁을 단행하지 못할 수도 있고, 국민들의 주의를 다른 곳을 돌리거나, 포퓰리즘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1) 베네수엘라

차베스는 1990년 말 국제유가의 하락으로 베네수엘라 경제가 급격하게 붕괴하자 강력한 카리스마와 설득력으로 고조된 국민들의 불만을 정치에 끌어들였다. 그는 푼토히호 체제(권력분할 협정을 맺은 양대 정당의 공조체제를 이르는 말)의 부정부패와 편파주의 그리고 태만(怠慢)에서 베네수엘라를 해방시키겠다고 했고 기존 체제에 불만을 갖고 있던 대중들은 그를 지지했다. 1998년 차베스는 56%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차베스의 통치도 베네수엘라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일정 기간이 지나자 대중의 지지를 잃게 되었고 그의 권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기존 정치세력과 차베스 하에서 불만을 품은 세력들의 저항이 시작됐다. 이 대립으로 다시 베네수엘라는 정치적 혼란에 빠지게 됐고 국가경제는 더욱 파탄나게 됐다. 1999년 중반에서 2003년 초까지 베네수엘라 경제는 10% 축소되었다. 실업률은 17%까지 올라갔다. 외국 투자자들은 사무실을 폐쇄하거나 기업활동을 축소했다. 정치세력들의 대립과 마찰의 결과 석유산출량이 줄어들었고 이것이 유가 급등으로 이어져 세계경제까지 타격을 입혔다.

2) 희생양을 만들어 온 짐바브웨

짐바브웨의 대통령 무가베는 희생양을 만들어 자신의 실정(失政)을 만회한 경우다. 그는 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릴 줄 알았다. 실업과 인플레이션 모두 60% 가량이나 되었고 인구의 절반 이상이 빈곤선 이하에 살고 있었다. 무가베는 이런 경제적 어려움을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 영국의 식민 통치,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유태인들의 탓으로 돌렸다. 무가베는 희생양을 통해 국민들의 불만을 관리했다. 하지만 그의 방법은 점점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붕괴되는 경제와 늘어나는 실직자들, 끝을 모르는 인플레이션 등 그의 정치적 무능은 더 이상 희생양을 찾을 수 없게 만들었다.

3) 싱가포르의 눈부신 성공

1959년의 싱가포르는 가난했고, 빈민가, 결핵문제, 급증하는 인구문제, 불안정한 노동문제, 인종문제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초대 수상인 리콴유는 이런 싱가포르를 1인당 국민소득 2만 4,740달러, 국민 90%가 본인 소유의 주택을 가지고 있고, 문자해독률이 92% 이상, 어린이들이 100% 정부의 지원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부국으로 만들었다. 리콴유 정부는 강압적이었으며, 그가 이끄는 국민행동당도 권력을 독점하고 있었다. 언론에 대한 통제나 검열, 사회생활에 대한 규제 등도 많았다. 하지만 싱가포르에서는 정치적 충돌이 30년 동안 한 번도 없었다(마지막 시위가 1986년에 있었다). 그 이유는 아주 복잡한 일들을 조정하고 지휘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과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리콴유 정부는 국민들의 분노가 올라가기 전에 먼저 그 이유를 파악해 잘 대처했다. 그리고 국민들의 불만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지도자의 힘

효과적인 제도를 갖추고 있는 선진 국가들에서는 리더십이 국가안정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과도기에 있는 국가나 제도가 빈약한 국가에서는 리더십의 영향이 매우 커진다. 지도자에 따라 한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변하는지 우간다의 사례를 살펴보자.

이미 일인독재로 전락한 나라인 우간다에는 유별나게 나쁜 대통령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악명 높은 사람이 이디 아민이다. 아민이 집권했던 8년간 약 30만 명이 학살당했다. 관료들은 실책에 대한 보복이 두려운 나머지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무식한 아민은 우간다 산업의 90%를 소유하고 있던 아시아인들을 추방시켜 경제를 몰락시켰다. 그 결과 1971년부터 1978년 사이에 우간다의 1인당 실질적인 국내총생산은 4.4% 급감했다. 1971년 등록되어 있던 930개의 공기업 중에서 300곳만이 살아남았다.

우간다는 밀튼 오보테, 이디 아민 같은 나쁜 대통령들 때문에 재앙을 당하게 됐다. 우간다는 좋은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했다. 다행히도 1986년 우간다는 요웨리 무세베니라는 대통령을 얻었다. 무세베니는 전임 대통령들과 달랐다. 정적들을 오히려 정부로 불러들였고, 민족문제를 해결했다. 추방되었던 아시아인들을 돌아오도록 했고, 경찰과 군을 정비해 사회를 안정시켰다. 경제정책에서도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등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그 결과 우간다 경제는 1990년부터 2000년까지의 평균 성장률이 6.9%에 달했다. 91년에 230%에 달하던 물가 상승률도 93년에는 0%로 급감시켰다. 빈곤율은 92년 56%에서 98년에는 44%로 떨어졌다. 국제적 기부국들도 우간다의 노력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우간다는 고채무 저소득국 중에서 채무 이행을 다 마친 첫 번째 나라가 되었다.


국가의 능력을 평가하라

올바른 정책이란 국가가 자기 국민의 번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정책의 성공여부에 따라 성공하는 국가와 실패하는 국가를 구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들은 좋은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어렵다. 정치지도자들이 권력유지를 위해 정책을 왜곡하거나 좋은 정책을 수립했다고 해도 이를 집행할 리더십과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성공하는 국가와 실패하는 국가는 어떤 점이 다를까.

정부의 정책이 단기적일수록 불안정의 덫에 걸리기 쉽다. 특히 선거 직전에 이루어지는 정책결정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 단기적인 경제성장을 가져올 정책을 선호하게 되어 단기적으로는 대가를 치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익을 가져올 경제개혁은 중단하게 된다. 이런 정책은 선거가 있는 해에는 성과를 내지만 선거가 끝난 후에는 종종 경제 붕괴로 뒤따르게 된다. 멕시코의 사례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1) 선거 때마다 발생하는 경제 위기

멕시코는 1976년 20년에 걸쳐서 단일환율을 유지하던 페소화가 갑자기 60% 평가절하되어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의 급등으로 경제적 충격을 받았다. 1982년에도 멕시코 경제는 붕괴했다. 페소화는 거의 100%로 평가절하되었고 외채상환에 대해 일방적인 지불유예를 선언했다. 1988년에도 멕시코 경제에 위기가 닥쳤다. 인플레이션율이 150%에 달했다. 파급효과를 우려한 미국과 국제통화기금 그리고 세계은행의 긴급 구제로 멕시코는 파산상태로부터 겨우 벗어났다. 또 1994년에는 예상하기 힘들었던 위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멕시코가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으로 흑자예산을 기록했다. ‘멕시코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경제가 성장한 것이다. 1990년대 초에는 한 해에 300억 달러 규모의 외국의 투자가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멕시코에 주기적으로 위기가 왔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다. 하지만 경기가 좋아지고 있을 때도 멕시코는 돈을 빌리고 있었다. 경상수지 적자는 1994년에 8%로 증가했고, 페소화는 과대평가되고 있었다. 그리고 선거가 있는 해였다. 멕시코 정부는 선거가 끝나자 더 이상 페소화를 지킬 돈이 없었고, 페소화의 가치는 폭락했다. 멕시코는 50년 만에 최악의 경기침체에 빠지게 된 것이다. 세계 경제는 다시 멕시코에 발목을 잡혔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타이, 필리핀, 러시아, 폴란드 등 떠오르는 시장들이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시장들도 타격을 입었다. 미국도 멕시코의 채무 불이행을 막기 위해 긴급 국제기금에서 500억 달러를 대출해줘야 했다.

멕시코의 위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이 모든 사건들이 6년 간격으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때는 모두 선거가 있었던 시기였다.

정부의 개입 확대냐, 아니면 불간섭이냐 하는 논쟁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엄밀하게 말해서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정부의 역할은 규정을 만들어 국가경제의 심판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심판이 경기에 뛰어드니 혼란만 생기는 것이다. 심판이 속한 팀은 아무리 능력이 떨어져도 이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 과도한 정부 개입의 폐해

터키의 비효율적인 국가계획은 터키 경제를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갔다. 국가 주도의 경제정책의 비효율성을 반대한 투르굿 오잘은 ‘국가 주도의 경제해체’라는 명제 아래 권력을 장악했다. 오잘은 가격 자유화, 지원금 축소, 수입장벽 제거, 국유산업의 민영화 등을 실시하면서 인플레이션 비율을 한 해에 30∼40%까지 떨어뜨렸다. 하지만 오잘도 수십 년간 정부가 경제주체가 되어 정치적인 목표를 달성해왔던 습관을 극복하지 못했다. 오잘은 민영화와 자유화를 추진하는 동안 ‘기금정치’를 실시했다. 기금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지지자들을 매수하기 위해 고안된 예산 외적 지출이었는데, 이때 주차장 기금, 불쌍한 사람돕기 기금, 축구팀 기금 등 134개나 되는 기금이 생겨났다. 이런 예산 외적 기금은 재정적자가 폭증하는 데 일조했다. 또한 터키는 민영화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영기업들을 계속 운영했다. 이들 기업들은 정치적 목적에 봉사하도록 운영되었다. 비효율적인 국영기업에 거대한 임금과 구제금융을 지원하고, 예산 외에도 많은 기금을 분배하느라 1990년대에 터키는 비틀거려야 했다. 고도로 정치적인 정부의 개입은 터키를 병들게 했다. 결국 터키는 국가 파산을 면하기 위해 외국의 차관에 의존하게 되었다.

3) 시스템을 정비하라

일본의 한 경제학자는 2001년 가을, ‘일본 정부가 채무를 지불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험도가 증가된 것을 알았다. 자료를 살펴보니 일본이 프랑스와 스페인보다 위험한 국가로 분류되었던 것이다. 싱가포르, 영국보다 더 낮았고, 이탈리아, 보츠와나보다도 낮았다. 보츠와나? 보츠와나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앙골라와 위기에 처했던 짐바브웨 등을 이웃으로 하는, 육지에 둘러싸인 아프리카 남쪽에 있는 나라이다. 이 학자는 기가 찼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대국인 일본보다 등급이 높다는 보츠와나가 어떻게 그렇게 잘하고 있는가도 궁금했다.

보츠와나는 지난 35년 동안 1인당 연평균 7.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구매력 대비 기준으로 조정해서 1인당 국민소득은 6,600달러로 아프리카 다른 나라들의 평균보다 4배나 많았다. 이 이유를 보츠와나가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생산국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시에라레온이나 앙골라, 콩고 같은 나라에서는 이 다이아몬드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보츠와나는 열대기후에다 작고, 육지에 둘러싸여 있다. 1966년에 독립했을 때 이 나라에는 총 12킬로미터의 포장도로와 100명의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있을 뿐이었다. 이런 나라가 성공한 비밀은 바로 제도 때문이었다. 보츠와나는 다이아몬드로 번 돈을 선택된 몇 명의 소수가 나누어 쓰는 것이 아니라 많은 정치 엘리트들이 나누어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달리 풍부한 자원에서 창출되는 부를 생산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가 정비되어 있는 것이다. 때문에 풍부한 자원은 보츠와나의 성장을 위한 도약을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도약적인 성장은 곧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맺음말

지구에서 빅맥을 먹는 나라는 118개 국에 이른다고 한다. 세계화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현상이라고 저자들은 적고 있다. 빅맥의 위력이 광범위하고 견고해 보이지만 특정 지역 안에 들어오면 맥을 추지 못할 때도 있다. 한국에 김치가 있듯이 각 국가에는 고유한 음식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빅맥을 위해서라도 김치를 이해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다시 말해 성공적인 세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개별 국가들의 정치·사회를 읽는 눈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지역적인 사건이 더 이상 지역적인 사건에만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화라고 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계화의 어느 한 면만을 극대화해서 보기 때문에 이런 극단적인 반응들이 나오는 것이다. 모든 사물이 양면성을 갖고 있듯이 세계화 또한 위험이 따르는 동시에 기회 또한 존재한다. 멈출 수 없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하면 위험을 최소화하고, 국가의 발전 나아가 인류의 번영과 발전을 이룩할 것인지를 모색하는 게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것보다 훨씬 지혜로운 일이 될 것이다. 이 책이 지혜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