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한나라당 혁신위 통일정책은 모호한 말잔치
:: 최홍재
본지 편집위원



의사소통과 토론 기법 중에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이라는 것이 있다. 글자 그대로 머리에서 폭풍치듯 생각을 일어나게 하고, 일어나는 생각을 표현하게 하는 방식이다. 일관성이나 목적지향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참여자들의 생각을 풍부하게 드러내게 한다는 점에서 꽤 쓸 만한 기법이다. 더욱이 조직이나 단체에는 말 잘하는 사람, 자리 높은 사람이 있게 마련이고 이들의 의견에 스스로 주눅들어 한마디도 못하고 눈만 깜박거리다가 되돌아가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이 방법은 이들의 의견을 활발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여 수평적 민주성을 풍부하게 한다. 이렇게 너나없이 생각을 쏟아놓고 난 후 나온 생각들을 갈래별로 정리해 가다 보면 일반적인 토론에서 갖지 못하는 장점들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렇게 쏟아져 나온 생각들을 하나의 줄기로 잘 엮어내는 것 역시 중요하다. 소수의 생각을 안으면서도 줄기를 엮어야 보배를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이 방식을 의미 있게 만드는 작업이다. 이 과정이 없으면 브레인스토밍은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아이들의 놀이터와 다를 것이 없다.

얼마 전 한나라당 혁신위원회에서 혁신안을 발표하였다. 글쎄 조직 이름이야 혁신위원회이니 딴말을 할 수 없겠지만 과연 나온 ‘안’에 ‘혁신’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브레인스토밍으로 사람들의 의견은 다양하게 나왔는데 이 의견들을 체계적이고 일관되게 정리하지 못한 산만함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럴 의사가 없는 것인지, 그럴 능력이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혁신적인(?) 통일방안을 마련하겠다는 한나라당의 작업이 완료된 것이 아니기를 바라며 비판적 조언을 시작하고자 한다.


1. 혁신위원회의 통일정책은 모호하며, 스스로 충돌하고 있다

혁신위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통일정책에서 벗어나 호혜적 상호주의에 입각한 유연하고 적극적인 대북 정책을 추진한다. 진취적인 경제협력정책으로 북한의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북핵 문제에 단호히 대처하고, 북한의 인권개선과 정상국가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고 말한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을 현실로 가져오면 도무지 종잡을 길이 없어진다. 순서상으로 보면 ‘개혁개방 추진 → 북핵문제 대처 → 인권개선과 정상국가화’로 표현되는데,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수평적으로 현실화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순서는 현실화되는 단계를 의미하거나, 역점 순위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햇볕정책이나 평화번영정책은 이 점에서 있어서 ‘김정일에게 잘 해주면 개혁개방도 되고, 인권도 개선되고, 궁극적으로 통일에 이를 것’이라고 단계론적 접근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일관성과 명료함을 가지고 있다. 결국 인권을 말살하고 있는 비정상적인 권력자와 점점 공동운명체가 되어가는 가련한 모습으로 귀결되고 있지만 말이다. 한나라당 혁신위는 ‘추상적인 덕담’을 얘기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면 분명히 주와 종, 현실적 경로를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스탈린 체제가 개혁개방을 추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화대혁명으로 상징되는 마오쩌둥 체제가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이런 체제를 개혁개방으로 유도하고 인권이 점차 나아지게 하려면 등소평이나 고르바초프 같은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이다. 동독의 사회주의처럼 야만성이 없는 체제의 경우 양으로 경제협력을 진행하고 음으로 인권개선을 실현해가는 것이 가능하다.

결국 개혁개방, 북핵해결, 인권개선과 정상국가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아갈 것인가의 문제는 김정일 체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햇볕정책이나 평화번영정책이 종국적으로 김정일 정권에게 뒷돈이나 대주고, 마름 역할이나 하면서 파산에 이르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김정일 체제는 마오쩌둥이나 스탈린 체제와 비교조차 불가능한 1인 독재체제이기 때문이다. 정치체제라기보다는 마피아 조직과 오히려 유사점이 훨씬 많다. 마피아 조직과 공조해서 무엇을 얻겠다는 발상으로서의 햇볕이나 평화번영의 종착점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있어서도 한나라당 혁신위의 관점은 불명확하다. 김정일 체제에 대한 과학적 인식의 혼란과 통일원칙의 부재로 인해 혁신위의 통일방안은 ‘추상적인 덕담’이나 ‘브레인라이팅’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통일정책에서 벗어나 호혜적 상호주의에 입각한 유연하고 적극적인 대북 정책을 추진한다’는 말은 또 무엇일까? 그간 한나라당(혹은 그 전신)의 통일정책이 소극적이고 방어적이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현재 주류의 통일정책이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라는 뜻인가? 혁신위 안 제18조에서 ‘남북교류협력은 정경분리와 민관분업의 틀에서 추진하되 투명성을 확고히 확립한다’는 것을 보면 현재 주류 정책에 대한 비판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이나 그 전신이었던 정당, 혹은 정권의 통일정책을 문제 삼고 있다고 보인다. 즉 노태우 정부, 김영삼 정부의 통일정책을 소극적이고 방어적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인데 이건 사실과도 맞지 않고 자기비하적이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매우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대북정책이자 통일정책이었다. 김영삼 정부의 정상회담 추진이나 북한 체제 붕괴 대비 시스템 구축 등도 매우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대북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정책이 친김정일 정권적인 사고를 가진 세력이 용납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당시 조성된 상황에서 부분적으로 비현실적이었던 판단 등은 평가될 수 있겠지만 한나라당 혁신위원회가 이러한 정책을 소극적이었다거나 방어적이었다고 평가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함에도 자학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혁신위의 관점 자체가 햇볕정책의 아류로 편입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또 한 가지 호혜적 상호주의라는 표현의 의미는 무엇인가? 전에 한나라당에서는 호혜적 상호주의라는 말이 아닌 전략적 상호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전략적 상호주의는 국제관계의 일반적인 규칙이다. 히틀러에게는 그에 맞게 대하며, 등소평 정부에게는 등소평 정부에 맞게 대하는 것이 전략적 상호주의이다. 말은 거창하지만 일반적인 상식에 부합하는 정의의 원칙이다. 전략적 상호주의에 입각하면 국군포로 문제는 남북회담의 의제가 되어야 한다. 비전향 장기수가 그들의 뜻에 따라 평양으로 보내지는 것처럼 국군포로들도 뒤늦게 나마 그들의 뜻에 따라 행선지를 정해서 움직여야 한다. 또 납치피해자들의 생사가 확인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이것이 전략적 상호주의이며, 쉬운 말로 세상 사는 이치이다. 그런데 호혜적 상호주의라 한다. 이 말은 뭔가? 장기수는 송환하면서 김정일이 입을 씻으면 국군포로와 납치피해자들의 삶과 죽음, 그리움은 의제에도 올리지 못하는 것이 호혜적이라는 말인가. 그런 것인가? 혁신위는 답변해야 한다. 전략적 상호주의와 호혜적 상호주의의 현실적 차이에 대해서 말이다.

한 가지 더 언급해 보자. 혁신위의 모호한 충돌은 통일방안에도 연결된다. 혁신위안 제15조 <한반도 통일의 대전략 수립>에 보면 “평화와 화해를 바탕으로 남북한 7000만 동포와 국제사회가 동참할 수 있는 통일방안을 수립하고 실현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고 나와 있다. 혁신위에 관계된 모 의원은 “통일은 단순히 분단 극복 또는 실지 회복으로 국한하는 게 아니라 북녘동포를 포함한 한민족의 네트워크를 통합시켜야 한다는 개념으로 정책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위에서 말한 ‘국제사회의 동참’과 아래서 언급한 ‘한민족 네트워크 통합’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남북의 대의기구를 통해 통일방안을 확정하겠다는 것인가? 민족통일정치협상회의(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를 통해 통일방안을 확정하겠다는 것인가? 이 과정에서 국제사회는 어떻게, 어떤 구조로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인가?

한 마디로 혁신위 안은 자신들의 과거 정책에 대해 비하적이고, 햇볕정책을 열등적으로 모방한 듯하고, 그 과정에서 통일의 원칙을 상실해 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2. 원칙을 상실한 혁신위의 통일정책

모든 통일이 선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모든 통일방법이 선인 것은 아니다. 김일성이 저지른 6.25전쟁은 선이 아니다. 현실화되지는 않았지만 이승만의 북진통일론도 선이 아니다. 남과 북이 통일된 결과 정치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상실하고, 경제적으로 파산되며, 지역적으로 갈등의 골이 심화된다면 이런 통일은 선이 아니다. 통일의 과정은 우리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참으로 다양한 돌발변수를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통일을 어떠한 수단을 통해서라도 이루자고 해서는 곤란하다. 통일은 민족 구성원의 삶을 정치-경제-문화적인 측면에서 더욱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며, 세계평화에 기여해야 하고, 전쟁이나 혼란, 희생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위의 두가지 이유로 인해 통일정책은 반드시 통일원칙을 가져야 한다. 이 원칙이 있어야 중심과 부차를 정확히 할 수 있으며, 다양한 돌발변수에 휘둘리지 않고 올바른 통일을 향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혁신위원회의 통일정책에서는 통일원칙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개념이 모호하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다. 한 문장 내에서조차 양립할 수 없는 좋은 말들이 상호충돌하고 있는 것도 원칙의 부재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3. 한나라당 혁신위원회는 여의도연구소에서 발표한 통일원칙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훨씬 생산적일 것이다

한나라당은 2004년 말 여의도연구소 주최로 ‘한민족선진공동체통일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연구소는 통일의 원칙으로 1)열린자주 2)민주평화 3)민족복리를 설정하였다. 자주의 원칙은 7.4남북공동성명의 첫 자리에 나오는 것으로 여타 통일정책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 해석을 둘러싸고 매우 큰 차이를 나타냈는데 연구소에서 발표한 열린자주는 자주의 원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하고 있다. 연구소는 “열린자주의 원칙은 남북한의 주도적인 노력아래 긴밀한 국제협력을 통하여 통일을 달성한다는 원칙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 정부가 무력으로 대만을 점령하는 방식의 통일을 추진한다면 한국과 일본, 필리핀, 베트남은 물론이고 미국 등 전 세계 사람들이 반대해 나설 것이다. 그렇기에 중국 정부 인사 중 극히 일부가 단숨에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더라도 그럴 수 없다. 즉 ‘하나의 중국’도 국제문제적 측면이 존재한다. 독일의 통일을 주변국에서 반대했다면 그들은 지금도 통일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독일은 2차 대전 전범국이라는 오명 때문에 더욱 국제적인 측면이 강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한반도의 통일문제는 한반도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국제문제이다. 이는 눈을 감고 귀를 닫아도 피할 수 없는 객관적 현실이다. 따라서 배타적인 자주, 비현실적인 ‘끼리끼리’론은 그 자체로 언어의 유희일 뿐이며, 구한말 대한제국을 몰락으로 밀어넣었던 위정척사파의 재판(再版)에 다름 아니다. 이성을 가지고 현실에 입각해서 민족과 인류의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한반도 통일의 양측면을 정확하게 보고 있는 열린자주의 문제의식을 더욱 풍부하게 발전시키는 입장에 서야 할 것이다.

민주평화의 원칙과 민족복리의 원칙도 더욱 깊이 있게 연구하여 발전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아무튼 여의도연구소는 민주평화의 원칙을 세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민주의 원칙, 전쟁이 아닌 방식으로서의 평화의 원칙,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민주평화론의 원칙이 그것이다. 이 원칙에 입각하면 대북정책, 평화정책, 통일정책은 일관성을 갖게 된다. 북한체제의 개혁개방과 민주주의적 진화를 통해 평화와 통일을 이루어간다는 것이 그것이다. 여타의 모든 정책들은 이 목표를 구현하기 위해 체계화되게 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평화의 원칙을 최대치로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최대한의 평화, 최대한의 혼란방지, 최대한의 인명손실 방지의 원칙으로 평화의 원칙이 확장되어야 한다고 본다. 수동적 평화가 아니라 적극적인 평화여야 한다고 믿는다.

민족복리의 원칙도 연구소가 진척시킨 중요한 성과라고 여겨진다. “민족복리의 원칙은 통일이 민족 상생과 복리의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원칙은 모든 통일이 선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민족 구성원들의 상생과 복리가 확장되기보다 거꾸로 위협이 된다면, 세계평화와 번영에 오히려 불안요소가 된다면 그런 통일은 퇴보일 수밖에 없다. 6.25전쟁이 퇴보였듯이 말이다.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는 이 세 가지 원칙에 입각하여 제법 일관되고, 체계적인 통일정책을 제출하고 있다. 물론 3단계로 구분된 경로로 들어가면 모호한 점이 발견된다. 이를테면 1단계로 화해협력단계에서 1민족 2체제 2정부라고 언급하고 있고, 2단계로 남북연합단계에서는 1연합 1민족 2체제 2정부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의 실질적 차이는 각급 남북회의가 정례화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필자가 보기에 남북의 정부 어느 일방이 어느 개인의 의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적 시스템, 혹은 정상국가적 법치와 조약이나 약속에 따라 움직인다면 위 두 단계는 굳이 구분이 불필요하다. 91년에 채택한 남북합의서만 제대로 이행되어도 이 두 단계는 이미 구현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각 정부가 민주주의 정부이거나 최소한 법치에 따라 운영되는 정상적인 정부인가 아닌가, 어떻게 이를 이루어 나갈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여의도연구소의 2단계는 기존 국가연합이나 연방제를 의식해서 짜맞추기식으로 인위적인 구분을 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한나라당 혁신위원회는 여의도연구소의 통일정책에 대한 연구성과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은 고사하고 이 성과를 완전히 사장시켰다. ‘자유민주주의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고,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을 햇볕정책(평화번영정책)에 비벼넣어 잡탕을 만들어 놓고 만 것이다. 죽도 밥도 아닌 잡탕을 무엇에 쓰겠는가? 사람들 헛갈리게 만드는 데에나 쓸 수 있을 뿐 아닌가.

물론 햇볕정책이 총론적으로 옳은 것이라면 도시락을 싸고 다니면서라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벙어리 삼룡이식 지원의 결과가 핵보유선언과 공개총살의 총소리임에랴 더 이상 무엇에 기웃거릴 것이 있겠는가?


4.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통일정책을 권고한다

민주주의에는 종류가 많다. 그리스 민주주의도 있고, 자유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도 있으며,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라는 것도 있다. 대의 민주주의도 있으며, 직접 민주주의도 있다. 요사이는 참여 민주주의도 회자되곤 한다. 어쨌든 다양한 민주주의의 공통점은 ‘주권재민’에 있다. 국민(인민)이 주인이며,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은 국민(인민)에게 있고, 국민(인민)의 이익과 행복 증진에 복무하는 것이 민주주의사상, 주권재민 사상의 공통점이 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가 국민(인민)들에게 폐기당한 것은 의사결정권을 소수 당 관료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며, 소수 당 관료나 1인 독재자를 위해 그 사회가 복무했기 때문이었다. 즉 민주주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폐기당한 것이다. 인류는 1인 왕에게 주된 권력이 집중되었던 봉건 사회를 넘어서 민주주의 시대를 열었다. 이제 모든 사회는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서 운영되고 있으며, 그렇지 못한 사회도 빠른 속도로 민주주의를 확장해 가고 있다. 통일도 사회운영에 관한 문제에 속한다. 따라서 통일문제도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해서 접근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없는 자주의 원칙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1인 독재자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자주는 이미 자주가 아니다. 민주주의 없는 민족대단결이 과연 존재할 수 있겠는가? 식량을 구하러 월경을 했다가 남한 사람을 만났다는 죄로 수용소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민족대단결이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말인가? 국민(인민)의 지위와 역할이 높아지는 방향이 아니라 그 역이라면 그때의 사회변화가 무슨 의미를 지닐 수 있겠는가?

한나라당 혁신위원회는 민주주의의 근본원칙에 입각해서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더욱 발전시켜 일관되고, 뚜렷한 통일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점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김정일 정권과는 상호주의를 견지해야 한다. 나쁜 행동에 대해서 보상하거나 굴종하기 시작하면 어떤 개인이나 국가도 감동을 받기보다는 무시하기 시작한다. 김정일이 일본 정부와 한국정부에 대해서 하는 행동의 차이는 자업자득인 것이다. 나쁜 행동에 비판을 가해야 다음에는 나쁜 행동을 삼가고 좋은 행동을 하게 된다. 그것이 김정일 정권을 연착륙시키겠다는 햇볕정책에도 맞다. 이 상호주의 앞에 ‘전략적’이라는 말을 붙이던, ‘호혜적’이라는 말을 붙이던 그것은 상호주의만 정확하게 공감한다면 별 문제가 없으리라고 본다.

둘째, 북한 동포들과의 연대성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들의 처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그들의 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그들의 마음을 얻고, 그들의 역할을 높이는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건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식량지원을 예로 들어보자. 북한 동포들의 입장에서 보면 남한과 국제사회에서 보낸 식량이 최대한 많이 전달되어야 한다. 또한 이 식량이 김정일 독재체제를 강화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은 그들의 이익에 맞지 않다. 즉 식량을 김정일에게 직접 안겨줘서 그들이 마음대로 팔아먹고, 잘라먹으며, 체제단속을 위해 활용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식량을 지원하고 이 식량이 북한 인민들에게 얼마나 잘 전달되는지 감독해야 한다. 김정일이 이를 거부하면? 유엔식량기구에 기증하면 된다. 그곳은 그나마 최소한의 감독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남한에서 식량이나 여타 직접 지원을 많이 하다보니 김정일이 국제기관들의 구호활동을 중단시키고 있다고 한다. 돈은 돈대로 들고, 동포들의 원한은 원한대로 사고, 국제적인 비웃음은 비웃음대로 자초하고 있는 꼴이다. 참 미련한 짓이다. 초점을 북한 동포에게 맞추지 않고 김정일에게 맞추고 있는 엉뚱한 햇볕정책, 평화번영정책의 결과이다. 한나라당 혁신위는 자신의 안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