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새로운 학생운동을 개척하자
:: 조승수
세계화포럼 회원



21세기 세계화 시대 학생운동의 진로


들어가며

학생운동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논쟁은 지난 9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다. 변화나 혁신이라는 말조차 진부할 만큼 10년 넘게 지루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성과는 없다. 오히려 학생운동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시작한 논쟁 과정에서 학생운동은 분열과 침체에 빠지고 말았다. 90년대 후반 학생운동의 주류였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하 한총련)과 범 PD(민중민주) 진영이 급속하게 분열되었다. 크게는 혁명노선과 사상이념의 차이 때문이었고, 작게는 당면 정치목표의 차이 때문이었다. 물론 사상과 이념의 교체기 또는 세력 재편기로 접어든 시대상황을 반영한 결과이며, 핵심과 본질을 비껴난 비생산적 논쟁과 조직·정파 이기주의가 빚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그 이후 과거 학생운동이 가졌던 좌경성과 경직성을 비판하며 환경운동, 생명운동, 평화운동, 무정부운동 등 새로운 운동세력이 등장하는 듯했으나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었다. 2000년 이후에는 ‘운동권학생회’를 반대하는 일명 ‘非운동권학생회’가 등장하였고, 학생회에 대중적 기반을 두고 있던 학생운동세력은 대중적 기반을 잃었다. ‘비운동권학생회’는 과도한 정치활동을 지양하고 변화된 학생들의 요구를 우선함으로써 학생회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주장으로 학생들의 지지를 얻었다. ‘학생회여! 대학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는 비운동권학생회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준다. 그러나 비운동권학생회는 미래에 대한 비전, 대학과 사회문제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원칙 없이 자신들의 인기 유지에 급급했다. 자신의 이념적 근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사회적 역할을 자각하지 못함으로써 그 한계가 분명해져 가고 있는 것이다. 10년 넘게 계속되는 학생운동의 분열과 침체로 ‘학생운동’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해졌다. 결국 사회운동 및 정치세력들도 학생운동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학생운동에 대한 성찰 - 주류 학생운동세력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은 한국사회가 권위주의 시대에서 민주주의 시대로 이행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세계질서와 국제환경의 변화, 한국사회의 발전, 북한사회의 위기 등 급속하고 복잡한 변화에 직면하면서 위기를 맞이했다. 특히 80년대 후반 사회주의 국가들이 잇따라 무너지면서 강력한 사회주의 경향을 띠었던 학생운동이 크게 약화되었다.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 노선을 걷던 이른바 민중민주주의 학생운동세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이후에는 ‘북한 이데올로기’에 직간접적 영향을 받아왔던 이른바 ‘주체사상파’가 학생운동의 주류가 됐다. 그들이 이상사회의 모델로 여겼던 북한식 사회주의는 건재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북한사회의 극심한 식량난과 가혹한 인권상황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반대로 한국사회는 급속한 경제성장과 정치민주화가 이루어졌다. 90년대 중후반에 IMF 위기가 찾아왔지만 그것도 무난히 극복했다.

북한은 이상적 사회주의 국가이며 남한은 미제국주의의 식민지라는 사회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는 이른바 ‘주체사상파’가 주도하는 학생운동도 점차 그 이념적 기반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몰락과 북한사회의 위기만이 학생운동 약화의 요인은 아니었다.

노무현 정권이 등장하고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들이 생겨나며 386세대가 사회곳곳으로 진출하면서 학생운동세력은 중대한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기본적으로 한국 학생운동은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 및 대항세력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반제국주의민족해방운동과 반독재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권문제를 핵심적인 문제로 삼지 않을 수 없었고 정권쟁취를 주요 목표로 상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과거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선배운동가’들과 그들을 지지했던 세력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해버린 것이다. ‘후배학생운동가’들은 투쟁대상과 목표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권력을 장악한 선배들과 연대해 궁극적 목표인 남한의 사회주의화와 북한 주도의 통일운동을 전개할 수도 없는 것이다. 더구나 학생운동 지도부들이 지향했던 북한사회는 이미 인류최악의 반(反)인권국가이며 경제적으로 한국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낙후된 사회임이 입증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주장을 반복할 경우 자기논리의 모순에 빠지고, 대중적 지지기반을 상실한다는 딜레마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학생운동 지도부가 모를 리 없다. 그러나 학생운동 지도부는 자신들의 문제를 뿌리부터 반성하고 혁신과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최소한 감각적으로는 느끼고 있으면서도 주저하며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엄밀히 말해 근본적이고 새로운 변화를 할 만한 의지와 역량이 없어 보인다. 얼마 전부터 ‘한대련’, ‘학교로’, ‘다함께’ 등 새로운 학생운동 단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변화된 정세와 학생들의 마인드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판단된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이념과 노선, 운동방식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바꾸는 어정쩡하고 안일한 대응으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좀더 냉정하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낡은 이념의 노예라는 학생들의 비판이 두려워 이름을 바꾸어 자신을 숨기고, 또 달라진 이름으로 학생들을 모아 기존의 낡은 이념을 들이대는 비겁하고 기만적인 방법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이념으로 학생들을 선동하는 비도덕적 행위를 할 만큼 학생운동이 타락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미 학생운동 지도부가 ‘신념’과 ‘맹목’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병들고 무능해졌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많은 대학생들에게 지적 혼란을 안겨주고 있다. 주류 학생운동세력은 선동과 구호로 젊은 대학생들의 에너지와 정열을 낡은 정치논쟁에 소모하게 만들고 있다. 이렇게 해서는 학생운동의 변화와 혁신은 불가능하다.

학생들은 ‘새 것에 민감하고 진취적이며 진보적 성향이 강하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학생운동은 바로 이런 학생들의 특성으로부터 출발한다. 학생운동은 진보적이어야 한다. 학생들은 기성세대와 출발점이 다르다. 새로운 세대는 기성세대가 이루어 놓은 가치와 제도, 사회적 재부 위에서 새롭게 출발하여, 새로운 가치와 제도를 창조하고 사회적 재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학생운동은 진보적이지 않으면 생명력을 가질 수 없으며 역사적 의미도 지닐 수 없다. 학생운동은 순수해야 한다. 학생이라는 신분이 갖는 비이기성과 순수함이 반영돼야 한다. 또 학생운동은 강력한 결집력이 있어야 한다. 합리적 토론을 통해 정해진 공통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성원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힘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학생운동은 자발성에 기초해야 한다. 시대의 요구와 사회적 책임을 자각한 젊은이들이 또렷한 신념과 의지를 갖고 진행하는 학생운동이라야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추동할 수 있다. 학생운동이 낡은 이념에 매몰되어 정치동원부대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진보성, 순수성, 조직성, 자발성. 이것이 학생운동의 네 가지 특성이다.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학생운동이 고정되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추구함으로써 시대발전에 발맞추어야 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발전의 동력이 될 수 없다. 지금까지 주류 학생운동은 과거에 얽매어 단 한치도 진화하지 못한 채 멈춰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낡은 이념과 노선에 사로잡힌 학생운동은 어느새 시대발전에 역행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진보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에 조응하지 못하는 이념과 노선으로 학생운동을 진행하려다 보니 확고한 이념과 노선으로 학생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왜곡과 기만, 포퓰리즘으로 학생들을 선동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순수성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와 학생운동의 방향

학생운동과 관련된 한국사회의 핵심적인 변화는 무엇인가?

첫째, 한국사회는 권위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 사회로 이행했다. 지금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반독재민주화 투쟁이 아니라 법치주의를 강화하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성숙시키는 활동이다. 유념해야 할 것은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투쟁은 권위주의 체제를 민주주의 체제로 바꾸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거처럼 짧은 시간 내에 폭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성숙·강화하는 단계의 투쟁은 급진적인 방법을 지양해야 한다. 학생운동의 중요한 속성은 진보성, 미래지향성이다. 따라서 새로운 학생운동은 민주주의를 강화·성숙시키는 활동을 운동의 중요한 영역으로 삼는 한편 그것을 뛰어넘는 미래사회의 상을 연구하고 제시하는 활동을 병행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뛰어넘는 좀더 새롭고 진보적인 미래지향적 가치가 학생운동의 내용에 포괄돼야 하는 것이다.

둘째, 민주주의 발전과 함께 한국사회의 정치적 자유가 크게 확장되었다. 군부독재 시절 학생운동의 어깨에 지워졌던 과도한 짐을 이제 내려놓아도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시민운동단체도 민주주의 체제가 확립되어 가는 과정에서 이미 과포화 상태에 이를 정도로 늘어났다.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가 제한되어 있던 시절 그들의 요구를 용감하게 대변하던 학생운동은 이제 현재가 아니라 과거일 뿐이다. 정치는 정치운동과 시민운동에 맡겨야 한다. 그렇다고 개입 자체를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와 같은 정치투쟁 일변도의 활동을 개선하자는 것이며, 무리한 정치개입을 자제하자는 것이다. 학생운동의 목표가 권력쟁취가 아니라는 것이다.

셋째, 학생들의 이해와 요구가 다양해졌다. 급변하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묻혀 있던 학생들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가 분출되고 있다. 정치투쟁의 1번지였던 대학이 다양한 개성과 문화가 더 중시되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다. 대중의 이해와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운동은 성공할 수 없다. 학생운동은 학생들의 이해와 요구에 기초한 운동이다. 현재 학생들의 화두는 자기개발과 사회참여다. 1~2년 정도 휴학한 후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기업과 NGO 등에서 인턴활동을 하는 것이 대학생들의 전공필수로 자리 잡았다. 국경이 낮아지고, 정보유통의 제한이 거의 없어지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확산되는 추세다.

새로운 학생운동은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당장은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발전에 대한 시대이념을 분명히 하고, 대학과 대학사회를 견인할 수 있는 가치와 역량을 갖춰야 한다.


새로운 학생운동을 개척하자

한국사회는 지금 진보와 보수 또는 좌우 논쟁의 열병을 앓고 있다. 주류 학생운동은 ‘진보=좌파’, ‘보수=우파’라는 낡은 이분법을 기준으로 적아를 구분하고 보수와 우파를 공격하고 있다. 새로운 학생운동은 좌파는 진보, 우파는 보수라는 20세기의 낡은 등식을 깨는 사상운동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진보사상과 사회상을 모색하고 토론해야 한다. 특히 새로운 이념과 운동은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대표되는 20세기의 교훈과 세계화와 지식정보화로 대표되는 21세기의 새로운 흐름을 반영해야 한다.

1) 사회발전 전략에 세계적 차원의 민주주의의 확산을 포함해야 한다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생산관계와 계급구성을 중심으로 시대를 구분한 마르크스식의 사회구분방법도 있고, 산업구조 또는 생산요소를 중심으로 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수렵채취사회, 농경사회, 산업사회, 지식정보사회)도 있다. 또한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처럼 생산도구를 중심으로 시대를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구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류역사의 발전과정에서 발견된다. 다양한 종족과 문명으로 나뉘어 있던 인류가 점차 하나로 통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하나의 종족이나 국가, 또는 민족이나 문명의 입장에서는 자기 생활단위의 확장 현상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인류역사는 일관되게 생활단위가 확장되고 문명이 통합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고, 그 추세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몇 세기 동안 개인의 생활단위는 ‘국가’나 ‘민족’에서 ‘세계’라는 좀 더 큰 단위로 확장되어 왔다. 세계화 현상이 뚜렷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인류가 하나의 생활단위로 통합되는 인류공동체시대 또는 세계공동체사회가 인간의 보편적 발전을 꿈꾸는 진보운동가의 시야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을 거부할 것인가? 수동적으로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새롭게 다가올 인류공동체시대를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창조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진보운동 앞에 나서고 있다.

튼튼한 논거를 토대로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무한한 발전을 꿈꾸는 진보주의자들은 인류공동체시대를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창조하는 일을 진보운동의 방향으로 삼아야 한다.

인류공동체사회가 단숨에 우리 눈앞에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렴풋하게나마 방향이 선다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당면 과제이다. 민주주의를 세계적 차원으로 확산하는 것을 사회발전전략에 포함하자는 것은 그것이 인류공동체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당면과제이기 때문이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어떤 신분으로 태어났는가 하는 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했다. 그러나 현재는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났는가 하는 것보다 어느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태어났는가 하는 것이 개인의 삶을 더 크게 좌우하는 경향이 있다. 아프리카 작은 나라의 초원에서 태어난 사람은 아프리카의 저개발 상태에 대한 책임이 본인에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쟁과 기아, 난민으로서의 고통을 평생 동안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야 한다. 반면 미국의 뉴욕에서 태어난 사람은 미국 사회발전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다. 이는 절대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국적에 따른 차별이 전근대사회의 신분에 의한 차별로 인한 박탈감보다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20세기식 낡은 진보운동 이념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세계화를 단순히 자본주의의 세계화로 규정해버린다. 그런 인식은 실천적으로 세계화를 거부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세계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실천적 거부는 결국 국적에 따른 차별을 인정하고, 나아가 그 기득권을 보호하는 논리로 사용된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들의 잘못된 가치관과 운동노선이 선진국에서 태어나지 못한 전 세계 절반이상의 인류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가 희생되고 있다는 사실에 둔감하게 만든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세계로 나아가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그러나 세계적 차원의 민주주의 확산과 그 중요성, 진보적 가치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낡은 이념에 사로잡힌 정치세력과 언론의 영향을 받는 일부 대학생들은 세계화에 대해 정서적 거부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학생운동은 진보적 관점에 서서 세계화의 의미와 민주주의의 세계적 확산이라고 하는 전략적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2) 사회운영원리로써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원칙을 분명하게 내세워야 한다

한국사회는 이미 민주주의 제도와 질서를 안착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제 국민들의 요구는 반독재민주화가 아니다. 민주주의가 사회의 운영원리로써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성숙시키고 강화하자는 것이 국민의 요구다. 이는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다만 우리 사회가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문제가 복잡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황우석 박사와 같은 선진과학자들에 의해 줄기세포 허브가 만들어지고 세계 최고의 인터넷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수구꼴통’, ‘빨갱이’라는 말들이 난무하고 돈이 많거나 직위가 높다는 이유로 아랫 사람을 하대하고 무시하는 전근대적 의식과 관행이 남아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더욱 성숙시키는 활동에는 전근대적 잔재를 청산하고 보다 합리적인 의식과 생활태도를 함양하는 활동이 포함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와 연관해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좌우이념 논쟁의 비민주성이다.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가 분명해졌음에도 좌파는 아직도 꿈을 벗지 못했다. 한편 우파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 사고방식의 흔적을 지우지 못했다. 학생들 중에는 우파는 비민주적이고 좌파는 민주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좌우파 대립의 양상을 보면 논리의 적합성을 떠나서 양자 모두가 과연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인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고 서로의 입장 차이를 인정할 자세를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런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견해가 다른 세력들 사이의 갈등과 경쟁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진행되기 어렵다. 상대방을 타도하려는 정략과 언어폭력이 판칠 뿐이다. 최근 ‘강정구 발언’에서 보여주었던 극단적인 좌우파의 행동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의 대결은 지성의 발전과 사회진보에 별 도움이 안 된다.

다음으로 포퓰리즘(populism)이 지배하는 정치행태이다. 이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에서 민주정치제도 아래 참정권을 획득한 대중이 일정한 주관 없이 정책을 결정한 정치형태로, 어리석은 다수에 의한 정치를 비꼬거나 타락한 민주정치를 일컫는 데 사용된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포퓰리즘 정치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특히 유권자의 인기나 표를 얻기 위한 대중영합은 쉽게 발견된다. 그런데 최근 한국정치는 포퓰리즘에 대한 의존도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극성을 부리고 있다. 한국사회의 포퓰리즘은 여당과 야당은 물론이고 시민단체, 방송언론까지 가세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해 보인다. 포퓰리즘에 기반한 정책은 대체로 올바른 정책이 아니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21세기의 대중들은 교육수준이 높고 의식수준도 과거에 비해 높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사회현상을 파악해내면서, 올바른 정책을 생각해내는 데 한계를 갖는다. 대체로 올바른 정책들은 당장 대중들에게 인기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사교육비를 줄이겠다고 하면 대중들은 당장 과외 금지와 같은 즉각적인 조치들을 선호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인 평준화를 철폐하자는 식의 거시적인 정책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는 데 주저한다. 포퓰리즘에 기반한 정책은 대체로 엉뚱한 수혜자나 피해자들을 만들고, 종래에는 더 복잡한 문제들을 만들어내기 일쑤다. 포퓰리즘은 시민들의 도덕적 해이를 더욱 심화시키고 이른바 이익집단들의 극성을 부추기는 후유증을 가져온다. 속된 말로 ‘목소리를 높이면 통한다’는 인식이 퍼지게 된다.

끝으로 민족주의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주의는 민주주의와 근본적으로 배치된다. 민족주의는 근대 국민국가체제의 형성과정에서 출현하여 일시적으로 국민국가들의 내적 통합력을 형성하는 데 일정하게 기여했다. 그러나 배타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속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와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민족적 전통에 대한 합리적 비판과 극복을 허용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경향을 띠며, 전통에 속하지 않는 외래적 요소(문화, 사상, 종교 등과 이민자)를 차별한다. 이러한 차별이야말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사회의 가장 큰 적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체제를 100% 소화해 내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다양한 문제들을 갖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사회발전을 가로막는다. 이런 문제의 극복 없이는 미래사회로의 질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는 기존의 기성세대들만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 이미 그러한 것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들의 유효성을 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좀처럼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결국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새로운 세대의 몫이다. 한국의 학생운동은 사회의 활력과 진보를 위해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3) 북한의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적극 벌여야 한다

북한사회의 인권실태에 대한 설명은 수많은 자료와 증인들이 있어 생략한다. 북한의 인권문제 해결이 중요한 이유는 북한 주민들이 겪는 참상의 심각성이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을 소중히 여기고 북한 주민들의 처지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라면 사상과 이념, 정견과 신앙에 관계없이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크게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일이며 작게는 위기에 처한 동포와 민족을 구하는 일이다. 이는 남한 청년학생운동의 중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남한의 청년학생운동이 북한의 인권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북한사회의 운명이 남한의 운명과 뗄 수 없이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장래는 남한의 장래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북한의 변화가 가져다 줄 폭발력은 IMF 사태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크고 막대하다. 향후 10년 내지 20년, 어쩌면 그 이상의 기간 동안 북한사회의 장래문제는 우리 사회의 운명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지 모른다. 남북한 주민들 사이의 이질감과 격차를 해소한다거나, 북한사회를 재건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 재원을 마련하는 등의 문제가 상당기간 남한사회의 가장 중요한 정치경제적 과제이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도 정부차원에서 ‘대북사업’이라는 미명 하에 진행되는 공개적, 비공개적인 지원은 대단히 많다. ‘남북갈등’, ‘남남갈등’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한에 대한 북한의 영향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남한사회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관점에서만 보더라도 북한사회에 대한 개입과 참여는 중요하다. 북한의 인권문제 해결이 민주주의를 사랑하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한국 청년학생들의 주요한 과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좌우이념 대립에 발목을 잡혀 북한문제에 대한 객관적이고 본질적인 논의와 접근이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북한문제를 좌우이념 대결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청년학생들의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인간의 행복과 사회의 발전이라는 진보운동의 근본정신으로 돌아가 북한문제를 바라볼 때 비로소 그 실체와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4) 다양한 형태의 학생운동을 개척하자

학생회가 앞장서서 정치운동을 벌이던 과거의 방식을 탈피해야 한다. 학생회는 학생들의 이해와 요구에 의해 조직되고 운영되는 일종의 조합조직이다. 학생들의 이해와 요구가 변하게 되면 학생회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이러한 사정을 무시하고 여전히 학생회에 정치적 임무를 과도하게 부여할 경우 학생들은 학생회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사회는 민주주의가 크게 진전되었다. 당연히 학생회는 군사독재시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가지고 있던 정치적 역할에서 벗어나, 조합조직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야 했다. 학생회는 어느 한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요구를 실현하고자 하는 정파조직이 결코 아니며 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학생회는 조합조직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사회의 활력과 진보를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지지하고 지원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또한 학생정치조직이나 다양한 이념서클, 의제별 소모임, 각종 실천활동단체 등을 활성화하여 학생운동 조직을 다양화하고 학생회의 짐을 덜어내야 한다.


끝으로

운동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실사구시 하는 자세와 개척정신이다. 특히 현대와 같이 또렷한 시대정신이 없는 과도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학생운동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수구세력을 그토록 목 놓아 비판하던 학생운동세력이 어느새 실사구시와 개척정신을 잃고 과거에 얽매어 수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때다. 무능한 정치세력을 수없이 비판해 왔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비전과 대안도 없이 선동과 구호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얄팍한 활동방식에 젖어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반성해야 한다. 여전히 사회는 학생운동에 많을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젊음의 진취성과 순수함 때문일 것이다. 청년학생운동가들이여!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는 근본정신에서 다시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