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제 -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를 평가한다
:: 이동하
서울시립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1. 98명이 북한을 다녀왔다

2005년 7월 20일부터 25일까지 5박 6일 동안, 98명의 우리 문학인들이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그쪽에서 문학인이라고 행세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꽤 많은 수의 문학인들이 북한을 직접 방문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것 자체만 놓고 보면, 일단 좋은 일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런데 조금 자세하게 그 방문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의외로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권력자와 문학인

우리 문학인들의 북한 방문은,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라는 간판 아래서 이루어졌다. 바로 이 간판부터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6·15 공동선언이란 무엇인가? 5년 전인 2000년 6월 15일에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수령 김정일이 공동으로 발표한 선언문을 가리킨다. 우리 문학인들의 북한 방문이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라는 간판 아래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김대중·김정일 두 사람이 공동으로 발표한 선언문에 담겨 있는 내용을 ‘실천’하고자 하는 작업에 우리 문학인들이 솔선하여 나섰다는 뜻을 갖는다.

여기서 한번 찬찬히 생각해 보자. 2000년에 6·15 공동선언이라는 것을 발표하였을 당시, 그 선언의 주역인 김대중과 김정일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한 마디로 말하자면 ‘권력자들’이었다. 좀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국가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이었다.

국가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이 그 권력의 자리에서 만들어 발표한 선언문의 내용을 앞장서서 ‘실천’하겠노라고 문학인들이 98명씩이나 떼를 지어 나선다? 나서서 박수부대를 자청한다?
이렇게 되면, 문학의 자율성은 어디에 있게 되는가? 문학의 창조성은 어디에 있게 되는가?


3. 행사를 조직하고 주도한 사람들

위와 같은 질문이, 이번의 북한 방문 행사에 참가한 우리 문학인들 전원에게 똑같은 수준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들 98명 전원이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라는 이번 행사의 간판을 처음부터 분명하게 인지하고 그 간판을 따르는 데 적극적으로 동의하면서 참여하였던 것은 아닌 듯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번의 행사에 참가하고 돌아와서 『문학동네』 2005년 가을호에 소감문을 발표한 서영채 한신대 교수는 그 소감문 속에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고 있다.

어찌어찌하여 북에 가는 명단에 이름이 오르고, 막상 날이 잡혀 출발 전날 준비모임에 나가보니, 어마어마하게도 내가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에 참가하는 남측 대표단 중의 한 명이었다. 물론 어렴풋이는 알고 있던 것이었지만 막상 준비자료의 문면을 확인하고 보니 적잖이 생경하고 당혹스러웠다.1)

아마도 위와 같은 경우에 해당하는 문학인이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에게 던져지는 질문은,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 행사를 조직하고 주도한 사람들에게 던져지는 질문과 동일한 수준의 것이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 된다. 물론 서영채 교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하여, 앞에서 제기된 질문으로부터 완전히 제외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우리의 모든 논의와 문제 제기는 어디까지나 그 행사를 조직하고 주도한 사람들을 주로 염두에 두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4. 김정일이라는 사람

이제, 그 점을 분명히 하면서, 다시 본래의 논의로 돌아가 이야기를 계속하기로 하자.

앞에서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라는 간판에 내재되어 있는 기본적인 문제점을 이야기했지만, 문제는 사실 앞에서 언급된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6·15 공동선언의 한쪽 당사자인 김정일이 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는 지금 전세계를 죄다 돌아다녀도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하고 교활한 독재자이다. 그는 “수백만 명의 주민이 굶어죽어도 그것을 모른 척하며 ‘나는 경제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무책임한 지도자이고, 그 와중에도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핵무기 개발에 열중하는 군국주의자이며, 사회주의 혈맹인 중국 쪽을 향해서만이라도 개방의 문을 열었다면 주민들이 굶어죽는 상황은 면했을 텐데 오히려 국경을 더욱 강하게 차단하고 탈북자들을 처형했던 폭군이다.”2) 그가 지배하고 있는 북한 지역 내에는 나치 시대의 아우슈비츠와 같은 성격의 강제수용소가 대규모로 존재하고, 공개처형이 일상적으로 행해진다. 그의 지배를 받고 있는 북한 주민 전체가 기본적인 인권의 대부분을 박탈당한 채 거대한 강제수용소에 갇힌 것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남한을 겨냥하여 다양한 테러를 끈질기게 기획하고, 실천해 온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이 김정일이다. 이런 김정일이 한쪽의 당사자가 되어서 만든 6·15 공동선언이라는 것을 위한 박수부대의 역할을, 우리 남한의 문학인들이 나서서 자청한 것이다.


5. ‘남북’공동선언인가?

이른바 ‘6·15 공동선언’이라는 것의 좀더 자세한 명칭은 ‘6·15 남북공동선언’이다. 바로 이 ‘남북’공동선언이라는 말에 일부 우리 문학인들이 감상적으로 끌려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져 보면, 이 ‘남북’공동선언이라는 말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2000년 당시 선언문을 공동으로 작성하여 발표한 한쪽 당사자는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이었고, 다른 한쪽 당사자는 북한의 김정일이었는데, 이들 중 김대중 대통령은 남한 주민의 대표자라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김정일은 북한 주민의 대표자라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의 대표자라는 자격을 갖지도 못한 사람이 북한 대표자로 나서서 서명한 것을 두고 ‘남북’공동선언이라 인정해 줄 수는 없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한 주민의 대표자라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김정일은 북한 주민의 대표자라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라는 판단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김대중 대통령은 남한 주민들의 자유로운 선거에 의해서 대통령으로 뽑힌 사람이었지만, 김정일은 북한 주민들의 자유로운 선거에 의해서 그들의 수령으로 뽑힌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있다. 김정일은 북한 주민들의 자유로운 선거에 의해서 그들의 수령으로 뽑힌 사람이 아니라,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한 폭력행사와 교활한 세뇌공작에 의거해서 북한 주민의 인권을 압살하는 한편 그들의 대표자라는 지위를 강제적으로 점거해 오고 있는 사람에 불과하다.


6.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지금까지 6·15 공동선언의 북한 측 주체인 김정일과 관련된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그렇다면 남한 측 주체인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에는 문제가 없는가?

위에서도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김대중 대통령은 남한 주민들의 자유로운 선거에 의해 뽑힌 대통령이었다는 점에서, 일단 그의 법률적인 자격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법률적인 자격의 문제와 별도로, 보다 실질적인 차원에서 보면, 그 역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6·15 공동선언을 낳은 이른바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것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그가 막대한 액수의 돈을 비밀리에 김정일에게 건네주었다는 이야기가 정상회담 이후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7. 연방제와 연합제

그리고 우리는 98명의 우리 문학인들이 나서서 그 ‘실천’을 다짐하였다고 하는 6·15 공동선언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6·15 공동선언은 모두 5개 항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핵심은 누구나 인정하듯 다음과 같은 제2항에 있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이동복 씨가 명료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바와 같이3) 여기서 북한쪽이 말하는 ‘연방제’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지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것은 ‘1민족, 1국가, 2정부, 2체제’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 제도를 가리킨다. 김정일 정권은 오래 전부터 이런 방안을 그들의 공식적인 주장으로 제시해 온 바 있다.

그런데 이와 대조적으로, 남한 쪽의 주장이라고 하는 ‘연합제’라는 것의 정체는 상당히 모호하다. ‘연합제’라는 단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1민족, 2국가, 2정부, 2체제’가 되어야 하는데, 이동복 씨가 지적했듯, 6·15 공동선언의 남한 측 주체인 김대중 대통령은 ‘연합제’라는 단어가 이런 뜻을 내포한다고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말한 적도 없다. 그런가 하면, ‘연합제’라는 것이 2000년의 6·15 공동선언 이전에 김대중 정부에 의해서, 정부의 공식적인 주장으로 제시되었던 적도 없다. 김대중 정부는 한 번도 자기들 나름의 통일 방안을 공식적으로 제시한 적이 없다. 김대중 정부를 계승한 지금의 노무현 정부 역시, 자기들 나름의 통일 방안을 공식적으로 제시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면, 6·15 공동선언이라는 것의 구체적인 내용은 참으로 막연한 것이 되고 만다. 이렇게 막연한 것을 ‘실천’하겠노라고 다짐하는 행사를 조직하고 주도한 우리 문학인들은 그렇다면 6·15 공동선언의 내용을 어떤 것으로 이해하였기에 그것을 ‘실천’하겠노라고 다짐하는 행사를 조직하고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일까? 궁금한 노릇이다.


8. 오나가나 ‘6·15’

우리 문학인들의 북한 방문은, 다시 말하거니와,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라는 간판 아래서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나는 이 간판 속에 들어 있는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이라는 구절을 두고, 왜 그 구절이 문제되는가를 따져 온 셈이다.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이라는 구절은, 얼핏 보면, ‘민족작가대회’라는 말을 수식하는 존재에 불과한 것처럼 여겨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 만큼, 그 구절을 엄격하게 문제삼는 것은 지나친 수고가 아닌가라는 의심을 품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지나친’ 수고가 아니다. 이 행사를 조직하고 주도한 사람들 자신이 ‘6·15 공동선언’에 엄청난 중요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떠받드는 자세로 일관하였기 때문에, ‘6·15 공동선언’과 관련된 문제점을 엄격하게 점검하는 일은 지나친 수고가 아니라 결코 생략될 수 없는 기본적인 수고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해 주는 근거가 있다.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에서 공식적으로 채택한, 5개 항으로 된 ‘공동선언문’의 제1항을 보라. 그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되어 있다.

첫째, 우리 민족작가들은 6·15 공동선언을 조국통일의 유일한 이정표로 삼는다.

다시 말하지만, 이 행사를 조직하고 주도한 우리 측의 문학인들은 도대체 6·15 공동선언의 내용이 어떤 것이라고 이해하였기에 이처럼 자신 있는 어조의 발언을 거침없이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어쨌든 그들은 북한측 파트너들과 합의하여 결정한 ‘공동선언문’의 제1항을 위와 같은 문장으로 채웠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대회에서 장래의 지속적인 사업으로 결정된 사항이 무엇인가를 보라. 먼저 ‘6·15 민족문학인협회’를 결성하는 일이 있다. 또 ‘6·15 통일문학상’을 제정하는 일이 있다. 오나가나 ‘6·15’, ‘6·15’인 것이다. 이 또한, 이번의 대회 행사를 조직하고 주도한 사람들이 ‘6·15 공동선언’에 얼마나 엄청난 중요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떠받드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지를 누구라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9. ‘민족’이라는 낱말의 서로 다른 의미

그래도 한번, 가상적으로, 이번 행사의 명칭에서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이라는 구절을 떼어 보기로 하자. 그렇게 할 경우, ‘민족작가대회’라는 말만 남는다. 혹시, 이렇게 하면 사태가 괜찮아진다고 볼 수 있을까?

그러나 괜찮아진다고는 볼 수 없다. 남한의 문학인들과 북한에서 문학인으로 행세하는 사람들이 ‘민족작가대회’라는 간판 아래 만나서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 아래 얼싸안는다고 해서 일이 다 괜찮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왜 그런가? 같은 ‘민족’이라는 낱말을 사용하는 자리에서도 남한 측 사람들과 북한 측 사람들은 서로 판이한 내용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의 이야기를 들어 보라.

북한이 말하는 ‘민족’은 남한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민족의 개념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부터 ‘김일성민족’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평양방송은 1995년 1월 18일 ‘오늘 우리 민족은 수령을 시조로 하는 김일성민족이고, 현대 우리 나라는 수령이 세운 김일성조선’이라고 주장했으며, 노동신문(1995. 3. 27)과 조선중앙방송(1995. 4. 14)도 연달아 ‘김일성민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김일성을 ‘태양’이라고 하면서 우리 민족을 ‘태양민족’이라 하고 김일성의 출생년도인 1912년을 원년으로 하는 ‘주체연호’를 사용하고 있으며 김일성의 생일을 ‘태양절’이라 부르고 있다. 1996년부터는 ‘김정일민족’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고 있으며 1998년부터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 황하문명과 함께 ‘대동강문명’을 추가하여 이를 ‘세계 5대문명의 발상지’라고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웃지 못할 촌극 또한 벌어지고 있다. (…) 북한 정권이 말하는 ‘민족’과 남한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민족의 개념은 이렇듯 완전히 다르다. 북한에서 민족이란 김일성·김정일에게 충성하는 존재로서의 민족이며, 민족의 단결이란 김정일의 지배 아래 귀속되는 단결을 의미한다. 북한이 공개매체를 통해 자신들이 생각하는 민족의 개념을 누차 소개하고 있음에도 남한의 진보 인사들은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북한의 허구적 구호인 ‘우리 민족끼리’라는 전술에 호응해 주고 있다.4)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하게 해 둘 것이 있다. 인용문에서 곽대중 씨가 쓰고 있는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말은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지식인’이라는 말로, ‘진보 인사’라는 말은 ‘진보주의자라고 자칭하는 인사’라는 말로 바뀌어져야 한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참다운 의미에서 ‘진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의 대회 행사를 조직하고 주도한 남한 측의 문학인들이야말로, 북한 측에서 그들의 파트너로 나온 사람들이 ‘민족’이라는 낱말을 꺼낼 때 어떤 속생각으로 그 말을 꺼내는지를 과연 알고 있는 것인지, 모르고 있는 것인지, 어쨌든 그들은 ‘공동선언문’의 제2항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채우는 데에 북한 측의 파트너들과 뜻을 같이하였다.

둘째,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 아래 민족자주, 반전평화, 통일애국의 정신으로 문학 창작에 매진한다.


10. 결론을 내리자면

지금까지 살펴본 바를 종합해서 결론을 내리자면, 2005년 7월 20일부터 25일까지 5박 6일의 일정으로 진행된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라는 것은, 그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한국 문학의 역사 속에서 하나의 비극적인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결론을 피할 도리가 없다.

그런가 하면, 그 행사의 구체적인 진행 양상 역시, ‘한국 문학의 역사 속에서 하나의 비극적인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는’, 그런 수준의 것이었다. 앞에서 잠깐 인용한 바 있는 서영채 교수의 기록 가운데 그 행사의 구체적인 진행 양상을 묘사하고 있는 대목을 보기로 하자. 그 행사를 조직하고 주도한 사람들의 진면목이 이 대목 속에서 생생하게 드러난다.

그 자리에서 내가 느꼈던 당혹감은, 이제야 비로소 저 북쪽 땅을, 그것도 일 년이나 기다린 끝에 밟게 되었다는 착잡한 마음과 만나 더욱 증폭되었고, 다음날 평양에 도착해 우여곡절 끝에 네 시간 넘게 미뤄진 시각에 대회장에 들어섰을 때 절정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인민문화궁전의 장중한 대회의실의 구조 자체가 그랬다. 서로를 마주 보게 동심원 구조로 배치된 대중들의 자리가 있었고, 그 외변 중앙에 십여 석의 주석단석이 2단의 위압적인 직선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작가대회도 정해진 시나리오에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6·15 민족문학인협회가 결성되었고, 6·15 통일문학상이 제정되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은 그저 열심히 박수를 치는 것이었다. 애국애족의 문학, 천만 민중의 심장을 움직이는 문학, 자주통일시대 나팔수로서의 문학 등의 말이 북쪽 사람들의 입에서 나왔고, 최고의 언어인 모국어, 민족 자체의 고유성과 정통성이라는 말이 남쪽 사람들의 입에서 나왔다. 그리고 찬란한 민족문화와 숭고한 애국 전통, 지혜롭고 슬기로운 우리 선조, 세계 5대 문화의 발상지로서의 우리 조국이라는 말이 재일본조선예술가동맹 소속 작가들의 입에서 나왔다. 모두 아름다운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말에도 동의할 수 없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의례적인 박수조차 칠 수가 없었다.5)

한국 문학의 역사 속에서 하나의 비극적인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는 행사의 자리에서 그 주도자들에 의하여 ‘일사천리’로 통과되었던 결정사항대로, 장차 ‘6·15 민족문학인협회’라는 것이 정말로 만들어져서 활동하기 시작한다면, 그리고 ‘6·15 통일문학상’이라는 것이 정말로 만들어져서 줄줄이 수상자들이 나오기 시작한다면, 그 비극적인 상처는 점점 더 커져 가기만 할 것이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