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제 - 2005년 북한의 상황과 변화전망
:: 김영진
dailynk.com 중국 특파원



배급제 복원방침을 중심으로


1. 식량배급체계 복원 내용과 물가의 변동


최근 언론에 북한이 무너진 식량배급체계를 복원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다른 한편에선 식량배급체계의 복원 성격보다는 국가독점판매의 성격이 강하다는 기사가 잇따라 나오기도 했다. 북한의 식량배급 재실시를 놓고 엇갈린 시각과 증언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믿을 만한 북한 내부의 소식통에 의하면 식량배급의 복원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판단된다. 그 소식통에 의하면 식량배급체계의 재실시와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8월 11일 당에서 방침이 내부적으로 하달되었으며 8월 말에서 9월 초에 세부지침에 대한 학습강연회가 조직될 예정이라고 한다.
둘째, 그 동안 일부 우량 기업소에서 하던 자체적인 식량배급과 특정 기념일에 한해 진행되던 제한적인 식량배급을 국가관리 하의 양정(糧政)에서 전반적으로 실시한다.
셋째, 배급 대상은 직장에 다니는 본인에 한하여 식량을 배급하며 개인들이 시장에서 쌀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한다.
넷째, 10월 1일부터 실시하며, 직장에 다니는 본인에 한하여 쌀 1㎏에 40원, 옥수수는 20원에 배급하며, 부양가족을 비롯한 부족한 식량을 구입할 경우는 쌀 1㎏에 160원, 옥수수는 96원에 판매한다.

아직 세부지침이 내려오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배급량과 수매가격 등에 대해선 이 이상의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

이런 방침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배급을 받을 수 있는 도시 노동자들의 경우는 반신반의하지만 제대로 실시만 된다면 환영한다는 입장이며, 쌀 도소매를 하는 장사꾼들과 농민들은 불만이 많다고 한다.

쌀 배급제 복원소식이 전해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문제는 식량가격의 변동 여부와 암시장에서의 환율 변동 여부였다.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의 인터뷰와 북한 내부의 소식통 등을 통해서 교차 확인을 해 본 결과, 쌀과 옥수수 값의 변동이 있었으며 환율의 변동도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청진에서는 6월에 950원 하던 쌀값이 7월에는 700원으로 떨어졌으나 8월에는 다시 820∼830원으로 올랐다. 사리원의 경우에도 6월에 920∼950원 하던 쌀값이 7월에 650∼700원으로 크게 떨어졌다가, 8월에 다시 850원으로 올랐다. 쌀값이 눈에 띄는 변동을 보인 것이다.

환율을 보면 청진의 경우 인민폐가 6월에 340원에 거래되었는데, 7월에는 300원으로, 8월에는 다시 305원에 거래되었다. 달러는 6월에 2,750원, 7월에 2,300원, 8월에는 2,400원에 거래되었다.

6월까지는 지속적으로 쌀값과 환율이 오르다가 7월 들어서 쌀값과 환율이 하락했는데, 8월 중순경부터는 다시 오름세로 돌아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7월에 쌀값과 환율이 하락했던 원인은 대략 다음과 같이 추측된다.

첫째,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 쌀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식량배급과 관련된 소식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8월 11일에 공식지침이 내려오기 전에 주로 간부들과 선이 닿는 사람들을 통해서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셋째, 감자 등의 곡식이 나오기 시작했고, 올해에 작황이 좋은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넷째, 암시장의 환율은 가장 기본이 되는 시장 물가인 쌀값에 연동되어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2. 국가배급제 복원방침의 배경

올해는 당 창건 60돌을 맞이하는 해이다. 북한은 꺾어지는 해를 중시하는 데 60주년을 맞이하여 국가와 당의 내부통제력을 확보하고 결속을 다지며, 대외적으로 이를 과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필요성은 무엇보다도 내부로부터 나오고 있다.

지금 북한의 도시에 사는 절대다수의 시민들은 장사를 해서 생계를 유지하거나 부를 축적하고 있다. 공장이나 기업소가 문을 열고 있으나 설비와 연료와 원료 부족으로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는 공장이나 기업소는 별로 없다. 월급을 제대로 받을 수 없음은 물론 설사 월급을 제대로 받는다고 해도 1달에 2,000∼3,000원을 받아봐야 기껏 쌀 3∼4㎏이나 살 수 있을 정도이니 월급이 거의 의미가 없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공장 노동자로 등록은 해 놓고 있으되 일정액의 돈을 공장이나 기업소에 내고 출근하고 있는 것으로 하고 너도나도 장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은 2, 3차 산업이 70% 이상을 차지하는 공업국가이며, 평양과 몇몇 주요도시를 중심으로 생존과 사회적 활동에 필요한 모든 자원이 우선 배분되는 사회이다. 그런데 현재 평양의 주요구역과 핵심계층을 제외한 나머지 도시들은 배급이 끊긴 지 10년이 넘었다. 이는 곧 북한 당국이 주요도시에 사는 시민들에 대한 생존권적 통제력을 상실한 지 10년이 지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극히 일부지역과 아주 핵심적인 특권층을 제외한 대다수의 도시민들은 10년 이상을 당과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생존과 생활을 꾸려왔다. 이러한 현실이 시민들의 의식변화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런 상황 때문에 대다수 시민들의 당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지속적으로 약화되어 왔을 가능성이 높다. 권력 엘리트층들 사이에선 자신이 지켜야 할 체제와 지도자의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갖게 되었을 것이며, 그로 인해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러한 현실이 김정일 정권이 배급제를 복원하려는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핵심 권력층에 대해선 체제정비의 의지를 분명히 하고, 다수의 시민들에 대해선 생존권에 대한 통제력을 행사함으로써 체제에 순응하고 충성하는 것이 살길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하려는 것이다.

민심이반을 막고 전 사회적인 통제력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은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올 초에 회령을 중심으로 한 국경지대에 대한 ‘비사그루빠(비사회주의검열그룹)’ 활동의 강화와 공개총살의 집행, ‘109상무(군보위부 검찰, 보안성 당기관으로 편성된 단속반)’를 통한 불법 녹화물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 충성도와 성분과 경력을 세분화하여 기록한 주민등록 전산화 작업추진, 그리고 이번 배급제 복원방침 등이 좋은 예이다.

김정일 정권은 소위 고난의 행군 과정을 거치면서 해이해진 기강과 구멍이 뚫린 통제시스템, 멀어져가고 있는 민심을 잡지 못하면 체제가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진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후계구도까지 염두에 둔다면 더더욱 통제력 확보가 절실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완된 통제시스템을 복원하려는 것은 외부환경에도 원인이 있다.

김정일 정권은 지금 핵무기라는 도박판을 벌여놓고 판을 최대한 키워놓고 있는 상태이다. 9.11테러로 인한 미국 부시 행정부의 강력한 대태러 전쟁 추진 정국에서의 핵무기 개발 시인은 치명적인 자충수를 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중국과 한국을 방패삼아 고립과 위기를 넘어 왔으며, 새롭게 형성된 국제정세는 김정일 정권이 반전을 노릴 수 있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다. 대결과 협상의 국면이 교차하는 현재의 정국에서 결속력과 통제력을 다지고 그것을 시위하는 것은 협상력 제고에도 도움이 되고, 협상이 결렬될 경우 찾아올 대결국면에 대비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김정일 정권은 내부적인 결속력과 통제능력을 과시함으로써 미국에게는 압박정책이 무용함을 시위하고, 한국에게는 예상대로 북한이 쉽게 붕괴되지 않을 것이란 점을 확신시켜 주는 효과가 있다.

특히 한국 정부에게 이러한 확신을 주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쉽게 붕괴되지도 않을 것이고 붕괴되어서도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위기를 극복하고 점점 더 안정감과 결속력을 높여가고 있으니 다른 대안이 없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장기 존속할 것이며, 통제력을 유지한 채 점진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수립된 햇볕정책을 계속 밀고 나가는 것 이외에는 길이 없다’는 한국 정부의 판단과 입장을 더욱 강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김정일은 내부의 결속력과 통제력을 다질수록 신축성 있고 파격적인 전술로 한국정부와 기업을 요리하고 한국 여론을 끌어당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정동영 장관을 비롯한 한국의 정치권을 길들이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은 이미 입증되었고, 현정은 회장과 같은 새로운 기업파트너를 길들이는 것도 문제가 아니라는 듯 안하무인으로 행동하고 있으며, 현충원 참배를 비롯한 파격적인 이벤트를 연출하고, 8.15 민족대축전을 서울 한복판에서 벌였으며, 대규모 평양방문단을 받아들이고, 금강산 관광에 이어 개성과 백두산 관광도 곧 추진할 태세이다.

한국 정부, 정치권과 공생관계를 다지며 한국여론을 움직이는 수단이 커질수록 더욱 더 막대한 실리를 챙길 수 있고, 중국도 계속 붙잡아 둘 수 있어 미국의 압박을 피해 갈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이번 4차 6자 회담의 개최와 진행과정과 결과에서 입증되었다.


3. 식량사정과 배급제 복원방침의 전망

최근 북한은 식량지원보다는 개발원조가 필요하다며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구호단체들의 철수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은 의아하다는 반응이며, UN에서는 북한이 식량 원조를 계속 받아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북한의 식량난은 어느 정도일까? 배급제의 전면복원은 과연 가능할까? 즉 배급제를 전면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식량의 확보가 가능한가?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필자는 북한의 식량난은 심각하지 않으며 충분히 자체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단, 북한 정권이 인민들의 먹는 문제 해결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투명한 분배와 대책을 수립해서 추진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북한은 올해 최근 10년 이래 최대의 풍작을 기록할 것으로 추측된다. 북한은 2003년 412만 톤에 이어 2004년엔 425만 톤의 식량을 수확한 것으로 파악됐다(통일부 자료인용). 그리고 올해는 이것을 초과할 것이라고 하니 대략 450만 톤 이상은 수확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 필요한 식량은 얼마나 될까? 북한 인구는 2,3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인구 1인당 1일 평균 700g으로 계산하면, 1일에 1만 6천 톤 가량이 필요하며 1년이면 580만 톤 가량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북한의 배급제가 무너지기 전의 공식적인 배급표의 계산에 따르면 1인 평균 700g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2,300만 모두가 성인 남자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북한의 공식적인 식량배급표 기준으로 3급 700g을 공급받는 노동자가 세대주로 있는 가정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 가정에 세대주와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부양가족으로 사는 아내, 소학생 딸 1명, 중학생 아들 1명, 연로보장을 받는 어머니가 산다고 생각했을 때 15일에 한 번 공급받을 식량의 양은 본인의 몫으로 700g×15, 어머니와 아내의 몫으로 300g×15×2, 딸의 몫으로 400g×15, 아들의 몫으로 500g×15를 전부 더하면 33kg이 되며, 1개월이면 66kg이니 1인 평균 440g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2,300만 명 1인 평균 500g으로 계산해도 별 무리는 없을 것 같으니, 북한 인민 전체가 소비하는 식량을 1일 평균 11,500톤으로 보면, 1년에 420만 톤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투명하게 분배만 된다면, 현재의 생산량으로도 배급을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공업용 원료나 가축용 사료 등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수십만 톤으로 계산한다고 해도, 지금까지 송금된 금강산 관광대금 4억 달러나 7대사업 독점권 대금이라던 5억 달러 중 1억 달러만 사용해도 옥수수 50∼60만 톤을 살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은 금강산 관광을 통해서 매달 400∼500만 달러의 현금을 챙기고 있으니, 인민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귀중하게 생각하는 정상적인 정부라면 얼마든지 자력으로 식량문제 해결이 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엔과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계속 지원을 받고 있으니 식량이 부족할래야 부족할 수 없는 것이다. 일부계층이 굶주리고 많은 사람들이 충분한 식량을 얻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식량의 절대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북한 정권의 책임방기와 거대한 부정부패 때문이다.

필자는 북한에 더 이상 긴급한 구제식량지원이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더군다나 더 이상 지원식량이 필요 없다는데도 북한에 긴급 구호식량을 계속 지원한다는 것은 북한 정권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뿐이며, 협동농장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잘못된 지원이라고 본다.

매년 1억 달러씩을 들여서 식량을 수입하는 돈이 아깝고 부담스럽다면 간단한 방법이 있다. 협동농장을 폐지하고 농지의 사용권과 수확물의 자유처분권을 농민 개인에게 돌려주면 된다. 그렇게 하면 북한은 식량 수출국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배급제의 전면적인 복원 정책은 성공할 것인가?

배급제의 세부지침이 나와 봐야 보다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현재 알려진 대략적인 선에서 보더라도 성공가능성은 거의 없다.

첫째, 직장을 다니는 본인에게만 40원에 배급을 주고 나머지 부양가족의 부족분을 160원에 판매한다고 해도, 북한 당국은 생산원가에 훨씬 못 미치는 가격으로 방대한 양의 식량을 수매해야 한다. 과연 이런 비용을 북한 당국이 꾸준히 감당할 수 있을지는 극히 회의적이다.

둘째, 국가의 쌀 배급소에 제때에 쌀이 공급되지 않아 배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낮은 가격으로 팔 쌀이 부족하게 되면, 반드시 암거래가 이뤄지게 되며 이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은 7.1 조치에서 익히 경험한 바이다.

셋째, 북한 인민들은 이미 시장경제적인 거래에 익숙해져 있으며 북한 당국의 대책과 방침을 신뢰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은 쌀을 공급하고 수입하는 관료들이나 도매업자들 그리고 이를 감독할 관리들이 카르텔을 형성하고 기회를 엿보며 쌀을 제대로 공급하지 않고 빼돌리거나 매점매석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넷째, 쌀 가격만 터무니없이 낮고 나머지 생필품이나 공산품의 가격들은 하락하지 않거나 오히려 더 오르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여전히 월급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면 결국 쌀값도 현실화하고 월급을 수십 배 올리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책이 될 것이지만 이것은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부르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공산품들이 어디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마술이 일어날 수도 없지 않은가?

다섯째, 공장이나 기업소가 거의 가동되지 않는 조건에서 직장에 출근하는 노동자들이 하는 일도 없이 아주 낮은 가격에 배급만 받는 것이 지속된다는 것도 현실성이 별로 없다. 그래서 결국은 돌아가는 공장과 기업소를 중심으로 배급체계를 좀 보완하고 나머지는 예전처럼 시장에서 공급되는 그런 상황으로 되돌아 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4. 2005년 변화된 북한의 모습

북한은 소위 고난의 행군이라는 재앙을 통해서 엄청난 고통과 함께 되돌릴 수 없는 변화의 과정에 들어섰으며 지금도 그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김정일 정권이 아무리 가로막아 보려고 해도 가능하지 않은 뚜렷한 변화의 물결이 굽이치고 있다.

지금 북한 인민들은 소위 고난의 행군 시절에 비해서 한결 나아졌음은 물론 그 이전 시기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그 변화의 내용들은 어떤 것인가?

첫째, 인민들의 이동에 대한 의지와 의욕이 높아졌고 그 공간도 넓어졌고 이것은 의식의 변화, 민심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생존에 대한 절박한 요구로부터 북한은 물론 중국까지 넘나드는 이동에 대한 의지와 욕구가 대단히 높아졌고, 그러한 공간과 틈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북한 당국이 허용해서가 아니라 아무리 단속을 하고 싶어도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듯, 강렬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불법적인 거래가 광범위하게 형성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의 이동이 많아지게 되면 사람들이 보고 듣는 것이 많아지고, 보고 들은 것이 많아진 사람들이 접촉을 많이 하게 되면, 의식에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이제 평양이나 국경도시를 제외하고는 도에서 도를 이동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설사 평양이나 국경도시를 간다고 해도 특별단속기간이 아니면 돈(뇌물)과 조금의 요령만 있으면 갈 수 있다. 심지어 국경을 넘는 것도 이전처럼 목숨을 건다든지 하는 위험은 크게 줄어들었다.

2005년 8월 현재 통행증을 발급받는데, 일반 도(道)에서 도는 3,000∼5,000원, 국경도시와 평양은 10,000원, 두만강을 왕복하는 데는 60,000∼90,000원 정도이고, 친척방문으로 중국 여권을 발급받는 데는 500,000원(200달러) 정도면 가능하다.

둘째, 북한 인민의 생활과 의식은 탈 이념화가 고착화되었고, 시장경제적 상황에 적응하고 변했으며, 이것이 불가역적인 변화 상태로 진입했다.

북한 인민들에게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 우리식 사회주의 고수, 선군정치는 그야말로 지겹게 들어온 빈껍데기 구호일 뿐이다. 그걸 아무리 외쳐본들 밥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오히려 그렇게 순진하게 구호에 충실했던 사람들은 굶어죽었거나 거지가 되었다.

쌀이 부족하면 값이 오르고, 돈이 없어 구입하기 어려운 가전제품은 가격이 더디게 오른다. 요령껏 눈치껏 장사를 하고, 뇌물을 챙기고, 안면몰수 하고 도움을 받아서 돈만 생기면 꿈에도 그리던 쌀과 고기도 먹을 수 있고, 좋은 옷도 입을 수 있다. 평양에는 이미 장마당이 아니라 시장이 공개적으로 여러 군데 생겼고, 지방에서도 ‘7.1경제개선 조치’ 이후 장마당 단속을 해 보았지만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서 결국 당국이 나서서 공개적인 시장을 지어주고 분양하게 되었던 것이다.

도시의 시민 90% 이상이 장사를 주업 혹은 부업으로 해서 생계를 이어가거나 부를 축적하고 있다. 시장매대는 청진 수남시장의 경우(물론 위치에 따라 다름) 폭 50㎝, 길이 1m 하나에 20∼30만 원 정도 한다. 1일에 2,000원 정도를 벌면 그런대로 괜찮은 장사라고 하니, 1달이면 6만 원 정도의 수입이다. 그러면 4인 가족이 먹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이다.

핵보유 선언이라든가 6자 회담에 대해서 물어보면, “먹고살기 바쁜데 그런데 신경 쓸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 같습니까?”라는 대답이 바로 되돌아온다.

셋째, 군부와 보위부 그리고 당 관료 등 체제보위 세력들 속에서 부정부패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국경 경비대들이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들을 찾아 나설 정도가 됐다는 이야기는 이미 진부한 이야기고, 보위사령부나 국가보위부 요원들이 미화 몇 만 달러 정도면 정치범 수용소 내부를 촬영해서 팔겠다고 나서는 상황이 되고 있다. 그야말로 돈만 있으면 죽을 사람 목숨도 살리고, 돈이 없으면 개, 돼지보다도 못한 생활을 한다는 전형적인 돈 중심의 사회가 되었으니, 권력 있는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부정부패의 전선에 뛰어들지 않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결과를 초래한다. 하나는 부정부패의 이득을 보는 소수의 세력과 이로부터 소외되는 불만세력이 광범위하게 형성되며, 다른 하나는 정보와 사람의 이동 공간이 넓어지게 되는 효과가 있다.

넷째, 처벌강도와 연좌제가 일정하게 약화되고 있다.

1998∼99년까지만 해도 코를 철사줄로 꿰어서 탈북자를 연행해 갔다느니, 전선줄을 잘라서 팔아먹은 사람도 총살을 시켰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탈북자들이 북송되면 죽거나 거의 죽을 만큼 고통을 당한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1999년을 고비로 처벌이 완연히 약화되기 시작했다. 단순월경의 경우는 크게 문제삼지 않으며 교회에 나갔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밝혀지거나 돈을 좀 쓰면 심각하게 문제 삼지 않고 노동단련대에서도 빨리 나올 수 있다.

불법녹화물 집중단속기간에 걸린 사람을 북한 돈 수십만 원을 쓰고 빼낼 수 있었으며, 외국방송을 몰래 들어온 노인이 걸려들었는데 뇌물을 주자 고생만 조금 하고 나온 경우도 있다. 물론 아는 사람을 통해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 돈을 써야 한다고 한다. 뇌물을 쓰는 데 노하우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을 점점 대범해지게 하고 있으며, 저항세력에게는 저항의지와 용기를 갖도록 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다섯째, 북한 경제의 외국에 대한, 특히 중국과 한국에 대한 의존도가 현격히 높아지고 있다.

핵문제와 납치자문제 등으로 북일관계가 악화되고 북일 무역이 위축되면서(2003년 2억 6천만 달러, 2004년 2억 5천만 달러), 북한의 대중·대남 무역의존도가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03년 북한의 대중국 무역은 10억 2천만 달러, 2004년은 13억 8천만 달러로 10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남북 간 교역은 2003년 7억 2천만 달러에서 2004년 7억 달러로 약간 주춤하고 있지만 중국에 이어 두 번째 교역 상대로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대남 의존도는 지난 11년간 총교역량 중 남북 교역 비중이 연평균 22%, 지난 8년간 전 세계 대북지원 중 남한의 비중이 연평균 28%를 차지했고, 남한이 최대 대북 투자국으로 떠오른 점 등을 고려할 때 중국에 버금가는 대북영향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지금까지 금강산 관광(2005년까지 6년간 9억 4천 2백만 달러를 주기로 계약)과 정상회담 대가로 지급한 현금이 10억 달러가 넘어 최대의 현금 지원국이란 점까지 감안하면 한국은 북한에게 중국보다도 더 고마운 나라이며 중국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지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북한이 외부의 압력에 반응할 수밖에 없으며, 점점 더 취약한 구조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5. 북한의 변화전망

북한 인민들은 이제 돈만 있으면 뭐든지 구할 수 있으며, 돈을 가지고 권력자를 끼면 많은 돈을 벌어서 부자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담배 한 갑이라도 주지 않으면서 부탁하는 사람은 머저리 취급받으며 상대도 하지 않는다.

불가역적으로 변해버린 이러한 상황을 김정일 정권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7.1조치를 취하고 합법적인 시장을 짓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변하는 현실을 무조건 인정하고 뒤쫓아 가기엔 너무 불안하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통제력을 회복하고 체제수호에 문제가 될 소지를 차단하기 위한 몸부림도 적잖게 목격된다. 예상되는 김정일 정권의 행보와 북한의 변화는 어떤 모습일까?

첫째, 김정일 정권도 전면적인 개혁개방이 아니고서는 북한 경제의 회생과 사회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전면적인 개혁개방이 전면적인 체제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에 대해서 극도의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결국 수령절대주의 고수, 선군정치 고수, 군사력강화 노선을 견지하는 속에서 제한된 개혁 개방의 방향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을 확실한 지원자이자 인질로 잡고 때로는 파격적인 행보를 걷거나 모험을 시도하면서 생존력을 높여 가려고 하겠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미지수이다.

둘째, 민심의 이반 혹은 인민들의 변화에 대한 조용하지만 강렬한 요구 점증(평양의 무역일꾼이나 지식인들 속에선 ‘장군님께서 중국을 비판하시지만 조만간에 중국식의 변화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 외화 및 에너지 부족, 교착상태에 빠진 국제환경은 변화에 대한 강력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압력과 도전에 소심하게 대응하거나 혹은 과잉 대응하게 되면 정세와 민심에 커다란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셋째, 도시민들 속에서 장사가 90% 이상 자리를 잡았고, 농민들도 텃밭이나 뙈기밭이 적잖은 생계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협동농장을 그대로 두고선 근본적으로 개선이 안 된다는 사실이 점점 확연해지고 있으며, 개인들 간에 주택거래도 이뤄지고 있으며, 웬만한 크기의 상점이나 서비스업들은 사실상 사유화되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불일치 현상이 날이 갈수록 심화되어 모순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 모순을 점차 해결해 나가야 하는데, 결국은 불가역적으로 변해버린 소프트웨어에 맞게 하드웨어를 바꿀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하드웨어를 바꾸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민심을 얻을 수도 있지만, 크고 작은 저항과 마찰에 직면하고 불만이 커질 수도 있다.

넷째, 결국 김정일의 절대화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발버둥과 인민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한판 대결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파열음을 내면서 이 대결은 점점 격화될 것이다.

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세계의 적잖은 사람들이 이제 더 이상 이 싸움의 수수방관자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개입자이기를 선언해 나서고 있고, 그것이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문제는 싸움의 결과가 아니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