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제 - 21세기 세계 패권 투쟁
:: 이춘근
政博, 자유기업원 부원장


1. 서론

21세기가 시작된 지도 5년이 지났다. 지난 20세기는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이 있었고, 2차대전이 끝난 이후 1990년에 이르기까지 약 45년 동안은 미소 두 초강대국의 전쟁 위협으로 인해 인류의 역사가 절멸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살아야 했다. 소련이 망하고 동부 공산진영이 모두 망한 후인 1990년 이후 비로소 인류사회에 평화가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은 2000년을 맞이하며 21세기는 평화의 세기가 될 것을 기대하고 염원했었다.

그러나 2005년을 사는 우리들은 21세기도 역시 평화의 시대라기보다는 전쟁과 분쟁, 긴장과 갈등으로 점철된 시대라는 사실을 체험으로 느끼고 있다. 2001년 9월 11일은 약 10년 동안 지속된 인류 평화에 관한 낙관론을 일거에 종식시켜 버렸다. 미국 뉴욕시의 무역센터 빌딩이 미사일처럼 사용된 민간인 제트 여객기의 충돌 공격을 받아 무너져 내리던 날, 21세기의 평화라는 낙관적 관점도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이제 우리는 “반테러전쟁의 시대”라고 불리는 언제 끝날지 모를 기약 없는 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9.11의 충격이후 사람들은 국제정치를 보다 현실적인 시각에서 보기 시작했지만 사실 냉전의 종식을 평화의 도래라고 기대한 것 자체가 착각이었다. 국제정치란 본질적으로 평화와 화해보다는 전쟁과 갈등, 경쟁이 지배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국제정치에서는 전쟁과 갈등, 그리고 경쟁이 보다 더 본질적인 요인으로 나타나는 것인가?

이 세상 모든 국가는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자신보다 상위에 있는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즉 아무리 힘이 약한 나라라 할지라도 강한 나라보다 법적으로 열등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국가들이 모여 사는 국제체제는 국가보다 상부의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 무정부의 사회(Anarchy)가 된다. 무정부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나라들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힘이 없으면 국가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 그래서 모든 나라들은 국력을 증강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국력의 증강 노력에 성공한 국가들은 국제정치에서 강대국(Great Powers)이라고 불리게 되며 이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힘의 분포 상황은 시대별로 국제정치의 특징을 형성하게 마련이다.

여러 강대국의 힘이 비슷하여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시대(세력균형시대)가 있는가 하면 한 나라가 유난히 막강한 힘을 가지고 세계 정치를 지배하는 시대(패권시대)도 있다. 강대국들은 모두 자신이 패권국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미어셰이머 교수가 설명하듯 강대국이 패권국이 되기 원하는 것은 그 나라가 특별히 공격적이거나 그 나라가 잘못된 지도자들에 의해 통치되기 때문이 아니다. 강대국들이 패권국이 되려는 이유는 그렇게 되는 것이 그 나라의 안전에 가장 좋은 상태이기 때문이며 이는 무정부 상태로 특징 지워지는 국제사회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국가 행동이다. 국력의 증가를 포기한다는 것은 국가 안보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초반의 국제정치 현상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막강한 패권체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막강한 나라가 9.11 이후 국제정치의 현상을 타파하기로 결심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 이 시대가 혼란하고 폭력적으로 바뀌게 된 이유다. 9.11은 현상유지에 만족해야 하는 최강의 나라를 현상 타파국으로 바꾸어 버리는 계기를 제공했다. 그러나 현재의 국제정치는 테러전쟁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이외의 강대국들도 저마다 합종연횡(合從連橫)의 전술 전략을 통해 자국의 세력을 확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2005년 8월 하순, 중국과 러시아는 사상 최초의 합동 군사훈련을 함으로써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듯한 행동을 취했고 앞으로 인도까지 포함하는 군사훈련을 계획한다는 보도도 있다.

미국 역시 단순한 반테러전쟁만을 전개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패권을 장기적으로 지속시키는 대전략을 세워놓고 그 과정을 한 단계씩 착실하게 실행해 나가고 있다. 미국은 일본, 영국, 인도, 브라질에 대해서는 물론 러시아, 중앙아시아, 동부유럽에 대해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장기간 유지하기 위한 대전략을 이미 시행해 오고 있는 것이다.

과연 21세기 세계 패권의 지도는 어떻게 전개될까? 그리고 강대국의 패권 경쟁 구도아래 한국은 어떤 전략을 시행해야 국가 안보를 확보함은 물론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까?

본 에세이는 21세기의 강대국들이 패권을 추구하는 모습을 현재의 상황에 기반을 두고,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분석 기법에 의거하여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이 같은 목적을 위해 근대 강대국 국제정치 체제의 기원과 변동에 관한 일반적 설명부터 시작하자.


2. 근대 강대국 국제체제의 기원

잭 리비 교수(Kack Levy, 미국 Rutgers대학 정치학과)는 유럽 국가의 국민들이 처음으로 ‘나는 프랑스 사람’, ‘나는 이태리 사람’ 등으로 국민의식을 명확하게 가지게 된 시점은 1495년 이후부터라고 주장하며, 근대 강대국 국제체제 역시 이 무렵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강대국의 흥망』이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진 폴 케네디 교수(Paul Kennedy, 미국 Yale대학 역사학과) 역시 근대 국제정치 체제의 기원을 1500년으로 삼고 있다. 사실 그 이전으로 올라갈 경우 각 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영토 위에 건설된 국가에 대한 국민 의식, 혹은 국민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

즉 16세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약 500년간의 국제정치 체제는 강대국이 중심이 되어 국제정치를 꾸려온 정치 체제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 강대국들의 갈등과 흥망성쇠를 가장 체계적으로 연구한 윌리암 톰슨(William R. Thompson), 조지 모델스키(George Modelski) 교수 등은 국제체제의 패권국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포르투갈은 1430년부터 154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세계의 패권국이었고, 그 뒤를 이어 1640에 이를 때까지 세계의 패권국은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의 뒤를 이은 나라는 영국으로 1640년부터 1850년에 이르기까지 200년 이상 패권을 유지했다. 그 이후 패권국은 미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국제정치에서 패권국의 지위가 변하는 것처럼 강대국들의 국제무대에서의 순위도 계속 변하고 있다. 지난 500년 역사 중 영국이 약 2세기 동안 패권적 지위를 차지했고 나머지 국가들은 각각 1세기 정도 패권적 지위를 차지했었다. 이 패권국들은 모두 경제적 측면에서 세계 경제를 주도했을 뿐 아니라 지구 끝에까지 도달 할 수 있는 군사적 능력(military capability for global reach)을 갖추고 있었다. 이제는 그 처지가 약해진 포르투갈과 네델란드 역시 그들이 세계를 제패하던 당시 세계 해군력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막강한 해군을 보유했던 나라들이다. 국제정치의 패권국은 그 성격상 해군력이 강한 국가라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패권이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바뀌는 것은 평화적이지 않았으며, 큰 전쟁을 통해서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소위 패권전쟁이라고 불리는 세계대전 급의 대전쟁을 통해 새로운 강대국이 출현했고, 새로이 패권국이 된 나라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국제체제를 형성해 갔다고 보는 것이다.

콜린 그레이(Colin S. Gray)는 역사적으로 볼 때 대륙세력들이 패권국의 지위에 도전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그 때마다 궁극적으로 해양세력이 패권 쟁탈전의 승리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해군력은 패권국의 지위를 달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전략 군사력이라는 사실을 밝혀 낸 것이다. 영국의 패권적 지위에 대해 대륙국가 프랑스가 도전했었고,(18세기 말∼19세기 초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나폴레옹 전쟁) 영국은 그 도전을 물리쳤다. 다시 20세기 초반, 대륙국가 독일은 두 번에 걸쳐 영국의 패권적 지위에 도전했고(1차 대전, 2차 대전), 이 도전에서는 다른 해양제국 미국이 영국을 승계하여 패권국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패권 국가들이 변한다는 사실은 국제정치학자들의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었다. 모든 나라의 국력에 관한 연구가 국제정치의 중요 대상이지만 특히 패권적 지위를 차지하는 일류 강대국의 국력 변화 및 이에 따른 패권전쟁, 그리고 새로운 패권국에 의한 국제질서의 재편성은 국제정치학의 가장 중요한 연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최근, 특히 1980년 이후 패권국의 힘의 변동에 관한 연구가 더욱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미국 국력의 쇠퇴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특히 1987년 발간된, 순수 학술서적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폴 케네디 교수의 책 『강대국의 흥망』은 패권국들의 흥망과 성쇠에 관해 학자들의 연구를 촉진시킨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조차도 국제정치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가지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3. 패권국 변동의 이론

국제정치에서 패권국의 지위 변동에 관한 이론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제시되었다. 본 에세이는 본격적인 학술 논문을 지향하지는 않기 때문에 가장 대중적이고 이해하기 평이한 설명을 제공한 폴 케네디 교수의 강대국 흥망론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폴 케네디 교수는 1980년대 후반 미국의 힘이 몰락하고 있는 중이라고 분석하고 미국이 차지하고 있던 패권적 지위는 궁극적으로 다른 강대국이 물려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폴 케네디가 염두에 둔 차세대 패권국은 일본이었다. 폴 케네디 교수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패권의 지위를 차지하는 국가들의 발전 속도는 그 아래에 있는 국가들보다 못하다고 말한다. 즉 성장의 속도가 다르다(different rate of growth)는 것이다. 바로 이처럼 국가의 성장 속도가 다르다는 사실은 궁극적으로 챔피언 국가와 도전국가의 국력이 거의 비슷한 상태에 이르도록 한다. 그러나 도전국에 비해 국력의 우위를 잃어가고 있는 챔피언 국가는 상대적으로 힘이 모자란 단계에 이르렀을 때 챔피언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오히려 더욱 팽창적(군사적인 측면에서)인 조치를 취하게 되어 국력을 소진시킨다고 본다. 강대국의 흥망을 연구하는 다른 학자들은 이때 도전국은 자신의 위치에 걸맞은 국제체제를 만들기 위해 챔피언에게 도전하게 되는데 챔피언은 이를 맞받아 싸우게 되며 그래서 세계대전이 야기된다고 설명한다. 이런 세계대전들을 패권전쟁(Hegemonic War)이라 칭한다.

세계대전을 통해 승리하는 국가가 새로운 챔피언(패권국)이 되는데, 그 나라는 가용한 자원의 많은 부분을 자신이 주도하는 국제정치 및 경제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쓰게 된다. 즉 패권국은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국제질서를 창출하고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동원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새로운 패권국 역시 경제성장의 속도가 둔화되는 한편, 패권국이 아닌 다른 강대국들은 착실하게 국내경제 발전에 집중할 수 있으며, 패권국이 설정한 국제질서에 순응함으로써 그다지 많은 군사력을 보유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국에 유익한 국가안보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2차 대전 이후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바로 이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 미국은 자기가 주도하는 국제질서의 유지를 위해 막대한 양의 군사력을 세계 도처에 투사(projection of power)시킬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경제발전이 둔화된 반면 일본은 국제체제에 순응하며 경제발전에 집중한 결과 드디어 도전국의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이다.

폴 케네디 교수는 챔피언이 된 나라는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자국의 힘을, 특히 군사적인 힘을 전 세계를 향해 펼치게 되는데 그것을 ‘제국적 과도 팽창(Imperial Overstretch)’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제국적 군사력을 과다하게 팽창시킨 결과가 바로 경제 발전 속도 둔화의 기본 원인이다. 이 경우 대외 팽창을 감소시키는 것이 기존의 지위를 지킬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지만 패권국들은 일반적으로 그와는 정반대의 조치를 취하는 경향을 보였다. 즉 위협받는 패권적 지위를 강화하겠다는 의도 아래 오히려 더욱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군사 개입을 더욱 확장하는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기왕의 패권국은 회생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폴 케네디 교수의 주장은 『강대국의 흥망』이 출간될 당시(1987) 미국의 국제정치 행위를 잘 묘사했다는 점에서 엄청난 충격을 야기했지만 그의 주장에 대한 반론 역시 만만치 않았다. 미국의 힘이 쇠퇴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1945년 당시와 1980년대 미국의 처지를 단선적으로 비교한 것인데 데이터를 다시 분석하면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별로 손상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으며, 미국의 경제발전 속도가 다른 강대국에 비해 별로 뒤질 것도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미국의 1945년 GDP는 당시 세계 전체 생산량의 거의 절반 정도에 이르는 것이었다. 그러던 미국의 GDP는 1980년대 세계 총생산의 22∼23% 정도에 불과하게 되었으며, 이는 미국의 힘이 쇠퇴했다는 중요한 증거로써 제시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력이 세계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1970년대 초반 미국의 경제력은 세계 전체의 약 1/4 이하로 내려갔고 그 이후 지속적으로 22∼23%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미국의 힘이 쇠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나 나이(Joseph Nye)와 같은 학자들은 1945년의 상황은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고 말한다. 2차 대전 직후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이 모두 잿더미가 된 상태에서 미국의 경제력이 세계 경제 전체의 50%를 차지했던 것은 비정상이며, 다른 강대국들이 경제적으로 완전히 회복된 1970년대 이후를 보아야 하는데 1970년대 이후 미국의 경제적 지위는 변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의 경제 발전 속도도 다른 강대국들과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폴 케네디의 경제발전속도의 차이에 의한 강대국 순위 변동이라는 개념이 거부된 것이다.

같은 자료지만 보기에 따라서 정반대의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1980년대 말 공산주의가 모두 붕괴하고 1990년대가 시작된 이래 미국을 축으로 하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고 있고 앞으로 적어도 20년 정도 미국에 당할 자가 없다는 예측을 보면 폴 케네디의 미국 쇠퇴론은 대폭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폴 케네디 교수는 2000년대가 시작된 이후 행한 연설에서 21세기에도 미국은 패권국의 지위를 상당 기간 유지할 것이라 말함으로써 『강대국의 흥망』에서 개진했던 자신의 논리를 대폭 수정하였다.


4. 21세기는 미국 패권의 시대

냉전이 끝난 후 약 10여 년간인 1990년부터 2001년까지를 신(新)국제질서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신국제질서의 시대’라는 용어 그 자체는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무엇이라고 특정한 이름으로 부를 수 없기에 그냥 편의상 부른 한 시대의 이름이었을 뿐이다. 아무튼 신국제질서의 시대는 2001년 9월 11일의 테러 공격으로 인해 또 다른 시대로 바뀌게 되었다. 2001년 9월 11일 단 하루 만에 급격히 바뀐 국제질서를 한 마디로 무어라 말하기 대단히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국제정치에 테러전쟁이라는 변수가 개입되었고, 국가가 아닌 알카에다와 같은 조직이 웬만한 국가보다 더 막강한 행위자(actor)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때보다 훨씬 복잡한 모습의 국제정치가 바로 21세기 벽두인 오늘의 세계다.

그러나 이 시대를 특징지을 수 있는 분명한 특징은 미국의 힘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막강한 시대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2005년의 시대는 ‘미국 패권의 시대’라고 불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미국의 유명한 국제정치학자인 부르스 버코위츠(Bruce Berkowitz) 박사는 2004년에 간행된 저서 『전쟁의 새로운 모습: 21세기 전쟁은 어떻게 수행될 것인가』(The New Face of War: How War Will be Fought in the 21st Century)에서 다섯 가지 숫자를 제시하고 이 숫자를 이해하고 있으면 21세기인 오늘의 새로운 전쟁 모습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다섯 가지 숫자는 단지 21세기 전쟁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유용할 뿐 아니라 21세기 초반인 오늘의 국제정치 일반을 이해하는데도 마찬가지로 유용하다. 먼저 다섯 가지 숫자를 나열하고 각각의 숫자가 가지는 21세기 세계 정치에서의 의미를 설명하기로 하자. 다섯 가지 숫자는 다음과 같다.

1. 7,500억 달러
2. 3,800억 달러
3. 3.2%
4. 17%
5. 3,025명

버코위츠 박사가 제시하는 첫 번째 숫자는 7,500억 달러라는 금액이다. 이 금액은 2003년도 세계 전체의 국방비를 의미한다. 이 세계에는 200개가 넘는 국가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모두 상당량의 돈을 국방을 위해 투자하고 있다. 이 금액은 세계 모든 국가 GDP 총액의 3.5%에 해당하는 돈이다. 즉 2003년 당시 세계 국가들은 자신들의 경제력의 평균 3.5%를 국방을 위해 투자하고 있었다.

한국의 국방비가 세계적으로 높을 것이라고 알고 있던 독자들에게는 놀라운 일이겠지만 한국은 2003년 한국 GDP의 2.8%에 해당하는 돈을 국방비로 지출했다. 우리가 숫자를 읽을 때 조심해야 할 사항이 하나 더 있는데 7,500억 달러라는 돈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고 과거와 비교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2003년보다 10년 전인 1993년 지구 위의 모든 국가들이 소비한 국방비 총액은 화폐가치를 고려해서 추정할 경우 약 1조 달러에 이르렀다. 결국 10년 후인 2003년 세계 전체의 국방비는 10년 전보다 무려 1/4이나 줄어든 것이다.

두 번째 숫자는 3,800억 달러라는 금액이다. 2003년도 미국의 국방비 총액이 3,800억 달러라는 말이다. 세계 전체 국방비가 7,500억 달러인데 미국 국방비가 3,800억 달러라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나라의 국방비가 지구 전체 국방비의 절반이 넘는(50.7%) 기가 막힌 상황이 된 것이다.

물론 버코비츠 교수가 제시하는 숫자와는 다른 통계도 있다. 전 세계 국제정치학자들로부터 가장 권위 있는 자료로써 공인 받고 있는 영국 국제전략연구소가 매년 간행하는 『군사력균형』(2004-2005)는 약간 상이한 자료를 게재하고 있다. 이 잡지는 2003년 현재 전 세계의 군사비 지출 총액을 9,971억 5,800만 달러로 추정하고 있으며, 같은 해 미국의 군사비는 4,049억 2천만 달러라고 추정한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의 자료를 가지고 계산할 경우라도 미국의 군사비는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의 40.6%에 이른다.

이처럼 한 나라의 국방비가 세계의 40%가 넘는 경우는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렵다. 특히 과학의 시대인 오늘날 국방비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연구개발비(Research and Development)에 투자되는 돈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는 2003년 미국의 국방관련 연구개발비는 470억 달러였으며 이는 세계 각국이 국방 기술 발달을 위해 투자하는 금액의 80%에 이르는 돈이라고 분석한다. 미국은 이외에도 정보예산으로 약 300억 달러를 소비했다. 같은 해 프랑스의 국방비 지출 총액은 350억 달러였고 한국의 국방비는 약 130억 달러 정도였다. 프랑스 국방비 총액은 미국의 국방비 중 연구개발비가 차지하는 돈에도 훨씬 못 미친다. 프랑스와 미국이 국력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수치를 알고 있었다면 2002년도 한국 사회를 들끓게 했던,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로 미제 전투기를 구입해야 할 것인가 혹은 프랑스제 전투기를 구입해야 할 것인가의 논쟁은 아예 시작할 필요도 없었을지 모르겠다.

버코비츠 박사의 세 번째 숫자는 3.2%라는 숫자인데 미국의 국방비가 미국의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하는 것이다. 세계 평균 국방비보다도 낮은 비율의 미국 국방비가 세계 군사비 총액의 절반이 넘을 정도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미국이 아무런 피곤함 없이 현재 수준의 국방비를 유지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사실 냉전이 한참이던 1980년대 미국의 국방비는 미국 GDP의 약 6% 정도 수준이었다. 스스로 전쟁 중에 있다고 믿는 미국이 만약 냉전 시대 수준으로 군사비를 증액시키면 미국의 군사비는 미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 국방비의 2배가 될 것이다. 한국전쟁을 치르는 동안 미국은 GDP의 12%를 국방비로 지출했었다. 이 숫자는 미국이 아직도 군사력을 대폭 증강시킬 여력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네 번째 숫자는 17%라는 숫자다. 지난 10년 동안 중국의 군사비가 매년 17%씩 증강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은 1979년 이래 금년에 이르기까지 연평균 9.5% 정도의 경이적인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냉전이 종식된 이후 중국의 군사비는 현격하게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소련(러시아)은 물론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거의 모든 나라들이 군사비를 대폭 감축했던 지난 10년 동안 중국은 가장 급속한 속도로 군사비를 증액시킨 나라로 기록되고 있다.

버코비츠 박사의 다섯 번째 숫자는 3,025명이라는 숫자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불과 2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미국 본토 내에서 테러공격을 받아 사망한 사람의 숫자가 3,025명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아무리 막강한 나라라 할지라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보이지도 않는 테러 그룹이 조정하는 공격을 받고 이처럼 대규모의 인명이 살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숫자다.

위에서 설명한 다섯 가지 숫자를 다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키워드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앞의 세 가지 숫자는 ‘미국의 힘’을 상징하는 숫자들이다. 미국의 군사비가 세계의 절반이 넘으며 그것은 미국 GDP의 3.2%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미국이라는 패권국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21세기 세계 정치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게 한다. 두 번째 키워드는 네 번째 숫자인 17%에서 나온다. 17%는 다시 ‘중국의 도전’이라는 단어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의 국제정치는 중국과 미국의 갈등으로 특징 지워질 것임이 거의 확실하다. 세 번째 키워드는 바로 3,025이라는 비참한 숫자에서 유래하는 단어 즉 ‘테러전쟁’이다.

21세기 벽두인 오늘의 세계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미국의 힘’, ‘중국의 도전’과 ‘테러전쟁’이라는 세 가지 핵심 키워드를 이해해야만 한다. 이 세 가지 키워드의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21세기 국제정치의 대부분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5. 미국 패권에 대한 도전과 전망

미국이 패권국이지만 미국 이외의 어떤 강대국이라도 자신이 미국을 능가하는 강대국이 되리라고 꿈꾸지 않을 나라는 없을 것이다. 냉전 당시에는 소련이 미국을 능가하겠다고 꿈꾸었고, 냉전 후반기 일본은 급속한 경제 발전을 기반으로 미국에 맞먹거나 혹은 미국을 능가할 수 있는 나라가 될 수도 있다는 꿈을 꾸었다. 1990년대 공산주의 붕괴 이후 현재까지는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나라가 없는 시대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나라로서 중국과 유럽이 급격히 부상하고 있다. 과연 중국은 21세기에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일 나라일까? 아니면 하나의 거대한 연방으로 통합되는 모습을 보이는 유럽은 미국을 대체하는 패권국이 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필자는 좀 과격하기는 하지만 중국이나 유럽이 미국을 능가하는 패권국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물론 이 주장을 위해서는 확실한 근거에 기반하고 있는 논리적인 설명이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미국과 도전국들의 패권 경쟁에 관한 여러 학자들의 설명들을 인용해 보기로 하자.

미국의 패권적 지위가 향후 상당기간 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은 지난 10년 이상 미국과 다른 강대국들의 경제력 격차가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미국의 군사력이 압도적으로 우월한 과학 기술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인구통계학적인 측면에서 미국이 가장 유리한 지위에 있다는 사실들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경제의 압도적 우위 상황

미국은 우선 경제력에서 다른 강대국의 추격을 불허할 정도로 막강하다. 2004년 세계은행의 통계에 의하면 각국 GDP는 미국 11조 6,700억 달러, 2위인 일본은 4조 6,230억 달러, 3위인 독일은 2조 7,140억 달러, 4위인 영국은 2조 1,400억 달러, 5위인 프랑스는 2조 26억 달러, 6위인 이탈리아는 1조 6,720억 달러, 7위인 중국은 1조 6,490억 달러였다. 러시아는 5,824억 달러였고, 같은 해 세계 11위였던 한국의 GDP는 6,796억 달러였다.(World Bank 2005년도 발표자료)

이처럼 미국의 GDP는 압도적인 우위에 있을 뿐 아니라 현재 그 성장 속도도 제일 높은 편에 속한다. 2005년 현재 미국은 각종 경제성장 지표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다. 특히 국가 경쟁력 지표에서 미국이 1위라는 사실은 미국 경제의 압도적 지위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유지될 것임을 말해주는 지표다. 국제경제학자인 노재봉 박사는 미국의 경제력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40% 정도가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의 경제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미국이 바로 3차 산업혁명의 주도국이라는 사실에 있다. 인류는 산업혁명을 통해 급격히 부를 축적했고 인간은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1차 산업혁명의 견인차는 증기기관이었고, 2차 산업혁명의 견인차는 전기였다. 3차 산업혁명의 견인차는 정보통신 기술의 혁명에서 나오는데 미국이 바로 3차 산업혁명의 절대적인 주역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은 3차 산업혁명을 통해 다른 나라와의 격차를 엄청나게 벌려 놓고 있는 중이다.

레스터 서로우 교수는 1991년과 2001년 미국과 유럽 강대국의 일인당 GDP 격차를 다음과 같이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1991년 당시 프랑스 개인소득은 미국보다 1,000달러 정도 적었고, 독일, 이탈리아의 일인당 GDP는 미국보다 2,000달러 정도 적었다. 영국은 미국보다 5,000달러 정도 적었다.” 2001년이 되었을 때 “프랑스 개인소득은 미국보다 13,000달러가 적고, 독일은 12,000달러 적으며 이태리는 16,000달러가 적다. 영국의 일인당 GDP는 미국보다 11,000달러가 적다.” 그는 “캐나다조차 미국과의 개인소득 차이가 1991년 2,000달러에서 2001년 15,000달러로 벌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1990년대를 거치는 동안 세계 500대 기업의 숫자를 비교해 보면 미국은 151개에서 238개로 늘은 반면 일본은 149개에서 50개로 떨어졌다. 미국과 동등하던 일본 산업 경쟁력이 미국의 1/5이 된 것이다. 과학의 대국으로 이름났던 독일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독일의 전자 산업이 미국보다 30년 뒤져 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이와 같은 미국 경제의 압도적인 우위 상황은 다른 자료들에서도 확인된다. 『이코노미스트』(Economist)는 “2050년 미국의 경제력은 유럽의 두 배가 될 것이다”라고 예측한바 있다. 2003년 현재 미국과 유럽의 경제력은 비슷하다. 많은 사람들이 유럽의 부상(浮上)을 말하고 있지만 유럽이 미국을 경제적으로 앞지를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없어 보인다.

중국 역시 1979년 이후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의 경제력은 2004년 현재 미국의 14%에 불과하다. 중국 인구가 미국보다 4배 이상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미국 사람들은 중국 사람보다 약 30배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같은 격차가 수십 년 안에 해소 되리라고 보는 것이 최근의 유행이지만 사실은 중국조차 미국의 경제력에 맞먹기 위해서는 앞으로 두 세대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의 압도적 우위는 경제적인 데서 출발하지만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군사력이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의 군사력은 얼마나 강한가?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 우위

미국의 우위가 돋보이는 부분은 경제력이기보다는 군사력이다. 현재 미국의 군사력을 당할 수 있는 나라는 지구 위에 아무데도 없다. 미국의 군사력은 다음과 같은 통계 수치와 전문가들의 언급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은 양적인 측면과 질적인 측면 두 가지 모두에서 보인다. 앞에서 버코비츠 교수가 제시한 다섯 가지 숫자에서도 나왔지만 2003년의 경우 미국 국방비는 약 3,800억 달러로 같은 해 세계국방비 7,500억 달러의 절반(50.66%)이 넘는다. 한 나라의 국방비가 지구 전체 국방비의 절반이 넘는 경우란 없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전 세계 군사기술과 관련되는 연구개발비의 80%를 미국이 혼자 쓰고 있다는 점이다. 과학 전쟁의 시대에서 앞으로 미국의 군사력을 당해낼 나라는 없을 것이다. 미국은 이미 유럽 국가들보다도 1∼2세대 앞선 무기체계를 장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03년 미국 국방비 중 연구개발비는 470억 달러였고 같은 해 미국의 정보 예산은 300억 달러 이상이었다. 오늘의 세계를 정보의 시대라고 말한다. 정보의 시대에서 정보란 전쟁의 수단이요 국부의 수단이 된다. 미국은 이같이 정보를 위한 국방 예산을 300억 달러 이상 사용하고 있는데 2003년 프랑스 국방비 총액이 350억 달러라는 사실과 비교해 보자. 2003년도 한국의 국방비 총액이 130억 달러 정도였으니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군사 통계 자료로써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알려진 영국 국제 전략문제연구소가 매년 간행하는 『군사력균형』(2004-2005)에 의하면 미국 국방비(2003)는 4,049억 2,000만 달러, 세계 군사비는 9,971억 5,800만 달러로 되어 있다. 보수적으로 분석할 경우라도 미국의 군사비는 세계 전체 군사비의 40.6%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군사 전문기자인 다나 프리스트(Dana Priest) 기자는 최근 저서에서 “2002년 현재 미국은 미국 다음으로 강한 나라보다 군사력 측면에서 10배 강하게 되었다”(By 2002, America's military was unmatched by factors of ten)라고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력은 첨단 과학 군사력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나라들과 격차를 벌여가고 있다. 미국은 한국전에서 3년이나 싸우면서도 제3세계 군대인 중국군을 이기지 못했고 월남에서는 패배하고 말았다. 미국이 다시 한국전, 월남전을 벌인다면 그 결과가 같게 나올 가능성은 없다. 10년 전 걸프전쟁 당시 미국이 표적을 발견한 후 파괴하는 데 평균 3일이 소요 되었다. 그런데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표적을 발견한 후 파괴하는 데까지 평균 45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월남전 당시 미군 항공기들은 원하는 표적을 하나 파괴하기 위해 약 300발의 폭탄을 사용했었다. 이라크 전쟁(2003) 당시 미국의 항공기들은 표적을 하나 파괴하는 데 단 한발의 폭탄으로도 충분했다.

미국의 인구통계학적 우위

미국이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냐를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은 앞으로 적어도 두 세대 이상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 확실하다.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대단히 불만이 많은 카터 대통령의 외교안보특별보좌관 출신인 브레 진스키 박사는 “일본은 미국과의 경쟁에서 탈락했고, 유럽이 미국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통일을 이룩해야 하며, 중국이 미국과 대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두 세대 동안 빈곤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한바 있다.(Zbigniew Brzezinski, The Choice 2004년 간행)

미국의 압도적인 우위가 다방면에 걸친 것임을 의미하는 말이다. 여러 가지 국력 요인 중에서 미국에게 가장 유리한 요인은 아마도 인구통계학적인 우위가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 세계 상당수 나라들에게 결정적인 위협요인은 바로 노령화 사회로 급속히 진전하고 있다는 인구 통계학적 요소다.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가 노령화 및 인구 감소로 인해 향후 수십 년 이내에 결정적인 위험에 당면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미국 학자들 중에서는 미국 역시 심각한 위험 앞에 놓여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미 오랫동안 이 문제를 생각해왔고 다른 나라에 비해 인구문제를 해결하기에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지난 10년 동안의 인구 통계를 살펴보자. 1992년부터 2001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미국의 인구는 2억 5,503만 명에서 2억 8,397만 명으로 무려 2,894만 명이 증가했다. 11.4%가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같은 기간 동안 프랑스는 5,737만 명에서 5,889만 명으로 불과 152만 명 증가(2.6%), 영국은 5,801만 명에서 5,950만 명으로 149만 증가(2.57%), 독일은 8,057만에서 8,218만으로 161만 증가(2.0%), 러시아는 1억 4,831만에서 1억 4,549만으로 282만 명 감소, 일본의 경우 1억 2,442만 명에서 1억 2,687만 명으로 245만 증가(1.97%)를 기록했다. 인구증가가 오히려 부담스러운 중국의 경우 10년 동안 11억 8,360만이던 인구가 12억 7,510만으로 9,150만 명이 증가(7.7%)했다.

선진국들의 인구가 거의 늘어나고 있지 않는 것과 달리 미국의 인구는 상당한 증가를 보이고 있다. 물론 어린이가 많이 태어나서 인구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존 나이스벳(John Nisbet)은 방대한 영토와 자원의 덕택으로 우수한 젊은 인력을 끊임없이 유인하는 미국의 개방 체제의 우월성 덕택에 미국에는 연 100만 명의 우수인재가 이민을 오고 있다고 말했다.(2003. 7. 24. 언급)

인구의 절대적인 수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인구의 구성이다. 모든 나라가 노령화되고 있지만 미국의 경우는 예외적이다. 오히려 일할 수 있는 인구가 느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2002년 기준으로 미국인의 평균연령은 35.5세였는데 이는 유럽의 37.5세보다 2세가 적은 것이다. 현재의 추세라면 2050년 미국의 평균 연령은 36.2세가 되고 유럽은 무려 52.7세가 되리라 전망된다. 최근 2050년 세계 최고령 국가는 평균연령(Median Age)이 53세 이상으로 예상되는 한국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한국은 세계에서 출산율이 최하인 나라로서 2002년 한국 인구가 세계 25위였는데 같은 해 0-14세의 한국 인구는 세계 156위였다는 충격적인 자료도 있다.


6. 결론

강대국들은 저마다 패권국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현재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로서 중국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중국 관리들은 오히려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원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학자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중국 위협론, 중국 도전론 등이 회자되고 있다.

한 가지 특기할 사실은 중국이 미국을 앞설 수도 있다는 논리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대체로 경제, 경영을 연구하는 사람들인 반면 중국이 미국을 앞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전략론, 국제정치학 등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필자는 전략론, 전쟁론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중국이 미국을 앞설 것이라는 낙관론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이처럼 생각하는 이유를 여러 가지 논리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중국이 미국을 앞서기 위해서는 앞으로 수십 년간 절대로 미국에 도전한다는 티를 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수준의 중국이 미국에게 맞먹는다고 보는 것은 국제정치의 상식을 벗어나는 말이다. 미국과 중국의 국력을 대충 비교하면 중국의 군사력은 미국의 1/10도 안 되고 경제력은 미국의 14%이다. 어떻게 두 나라가 싸움을 할 수 있겠는가?

만약 경제학자들이 말하듯 2050년에 중국의 경제력이 미국을 능가하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그것은 지금부터 2050년까지 미국의 정치가들을 거의 바보 수준으로 보지 않는 한 어려운 이야기이다. 만약 미국의 지도자들이 중국이 미국을 경제적으로 앞서는 상황의 도래를 허용 한다면, 미국은 곧 군사적으로도 중국에게 뒤처지게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을 초래한 미국의 지도자들은 국가 전략이 무엇인지 모르는 바보들이었다고 후세학자들에게 평가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미 미국은 중국의 패권 도전을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책을 통해, 논문을 통해, 그리고 정치가들의 언급을 통해 밝히고 있다. 미국은 앵글로 색슨적 전통을 이어 받은 나라다. 따라서 미국이 미국을 앞설 수 있는 도전국의 도전을 방치한다고 기대할 수 없다. 물론 중국은 미국을 앞서기 위해 온갖 전략을 다 강구할 것이다.

중국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러시아, 인도 등을 전략적 파트너로 고려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일본, 영국, 동유럽, 중앙아시아, 중동을 대전략의 대상으로 삼고 이미 눈에 보이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인도와 러시아가 중국의 전략동맹이 되기는 어렵다. 국경을 점하고 있는 강대국이 전략적 동맹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국제정치의 철칙이기 때문이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은 당연히 갈등적 요소가 높은데, 특히 영토에서 그렇다. 그래서 국가들은 먼 곳의 나라와 동맹을 맺어 이웃 나라를 공격한다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만고(萬古)의 전략을 따르는 것이다.

중국이 막강한 나라로 부상할 경우 이를 제일 무서워 할 나라는 당연히 러시아와 인도다. 결국 러시아, 인도와 전략적 동맹이 될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우리는 테러전쟁에 임하는 미국이 이미 21세기 패권 갈등의 대전략을 확실하게 수립해 놓고 한 단계씩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