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 세계민주화의 현황과 전망
:: 영 하워드
경제학 박사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교수가 다시 돌아왔다. 십수 년 전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던 그가 낙후된 나라에 제 역할을 다하는 국가 시스템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 돌아왔다. <시대정신>에서는 세계민주화를 주제로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 특별 인터뷰’를 마련했다. 이번 인터뷰는 최근 이라크 및 한반도 문제에 대한 견해도 함께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는 현재 미국에서 북한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영 하워드(Young Howard) 박사가 해주었다. 후쿠야마 교수와 하워드 박사께 감사드린다.


먼저 세계민주화와 이라크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이라크 민주화라는 명분으로 미국이 개입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독재자에게 군사적 공격을 가하는 것이 인류역사에 있어 합리적인 행위라고 생각하십니까?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어느 한 국가를 침략하고 군사적 점령을 가하는 것은 아주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물론,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침략에 있어 다른 동기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부시 행정부가 첫 번째로 대량살상 무기에 대해 우려하였으며, 그 다음으로 테러리즘과의 연계를 염두에 두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권은 세 번째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대량살상 무기나 테러리즘과의 연계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시 정부가 이 세 가지 이유 중 세 번째 이유인 인권을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는 이러한 외부 압력에 의해 절대 확대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사회 내부에서부터 비롯됩니다. 만약 국민들이 그들 자신들의 사회에서 지도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며, 이라크인들에게 제공했던 그런 방식의 민주주의로 인하여 현재 몇 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식의 민주주의는 이라크인들 자신의 창조물이 아닙니다. 결국 그들은 그 과정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정권을 위해 투쟁하고 열성적으로 지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현재 부시 행정부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 중 하나라고 봅니다.


미국의 점령 이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민주주의는 얼마나 진전되었다고 보며, 이들 두 국가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미국과 세계가 풀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인데요, 제 생각에 아프가니스탄은 많은 부분에 있어 이라크보다 잘 하고 있다고 봅니다. 미국의 공격이 있기 전 사람들의 예측과는 다른 부분인데요, 일단 침공 전의 아프가니스탄은 훨씬 더 혼란스러웠고 개발이 덜된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새로운 시작을 갈망하는 여론이 보다 많았습니다. 그들은 오랜 종교정치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내전은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큰 정신적 고통이었습니다. 물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군벌과 분산된 권력이라는 어려운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앙 정부가 완전하게 국가 지배력을 잃고 무질서 속으로 빠져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앙 정부가 지배력을 잃은 이라크에서는 종파나 민족 간 내전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라크에 대한 저의 생각은 전쟁 전과 같습니다. 미국이 많은 부대를 이라크에 오래 주둔시킨다면 질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테스트는 미국이 군대 철수를 시작하고 이라크를 이라크인 스스로에게 남겨둘 때 드러날 것입니다. 그 순간에 이라크인들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저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한국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미군은 지난 50년 동안 한국에 주둔하고 있었고, 그 기간 동안 한국에서는 결과적으로 많은 민주주의와 경제개발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라크에서도 이와 같은 상황이 가능하다고 보시지는 않습니까?

글쎄요. 아시다시피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있기는 하지만 주둔기간 내내 전쟁을 하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전쟁은 이미 종전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라크에서 매일같이 미국인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미국 국민들이 이라크 내 미군주둔을 지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교수님은 미군이 이라크에 얼마 동안이나 주둔할 거라고 보십니까?

글쎄요. 이 문제는 전쟁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미군은 지원병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올해 들어 신병모집이 상당히 줄었습니다. 이것은 현재 미국이 안고 있는 문제들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미국이 일 년 또는 그 이상 현재의 군사력을 유지하는 것이 무리라고 말합니다. 아마 연내에 미군 사상자들의 수나 피격 당하는 횟수 등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철군을 요구하는 정치적 압력이 시작될 것입니다.


미국의 이라크 간섭이 이라크와 다른 아랍국들의 민주화를 강화했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손상시켰다고 보십니까?

글쎄요.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확실히 이라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시아파들은 민주주의를 원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민주주의야말로 그들의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루트이며, 그 동안 계속 정치적인 권리가 거부됐기 때문입니다. 이라크의 강력한 정치 세력인 이들은 민주주의를 지원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수니 소수파들이 이런 정치적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새로운 사회에 반대하여 폭력투쟁을 계속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다수가 민주주의를 원한다 하더라도 만약 폭력이 계속된다면 이라크는 매우 혼란스런 상태로 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집트, 레바논, 이란 등의 다른 이슬람 국가들에서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볼 수 있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라크에서의 미국의 활동은 아랍세계의 민주화를 위해 다양하게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레바논은 시리아의 개혁을 요구했던 사담 후세인의 실패로 자극받은 사람들로부터 갑작스럽고도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의 경우, 저는 좀 회의적입니다. 무바라크는 워싱턴의 동맹자로부터 개혁에 관련해 약간의 압력을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그는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게끔 만들기 위해 개혁과정을 매우 잘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는 권력을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라크 전쟁에 의해 또 다른 것들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지는 않은지 잘 보아야 합니다.


레바논을 제외하고, 이라크 내 미국의 개입과 중동지역에서의 민주주의 변화 사이에 어떤 특별한 연관이 있다고 보십니까?

심지어 팔레스타인에서도 ― 당신도 아시는 것처럼 아랍세계에서는 가장 민주화된 부분 중 하나입니다. ― 아라파트의 죽음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로부터 철수할 것이라는 성명과 함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연합을 가져왔습니다. 새로운 정치적 이행을 시작한 이곳에 최소한의 희망이 생겼습니다. 저는 1980년대 이후 아랍-이스라엘 간의 평화를 위해 일해 왔습니다만 어떤 희망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지역에는 지난 기간보다 많은 기회가 생겼다고 봅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 서구유럽 국가보다는 동부유럽 국가 사람들이 좀더 협력적이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동유럽 사람들이 독재의 시대를 경험했기 때문에 중동 독재자들에 의한 억압적인 삶을 보다 잘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한 문화혁명을 경험했던 중국인들도 이라크의 독재 하에서 어떤 탄압이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들 또한 동유럽인들과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교수님이 생각하시기에 부시의 이라크 점령은 세계의 정치적 질서를 재편했다고 보십니까?

부시의 이라크 점령은 세계의 정치 질서를 재편했다고 보지만 의도한 대로 정확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전세계에 반미주의가 확대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라크에 약간의 정치적 진전이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동지역 전체적으로는 미국에 대한 불신이 엄청나게 팽배해 있습니다. 이집트나 다른 아랍 국가들에서 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들이 아랍세계에서 미국의 평판이 별로 좋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지원을 난처해 할 지경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신들의 민주주의에 대해 논쟁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복잡한 문제입니다. 미국의 신용도는 현재 복잡한 이슈이며, 아랍세계가 생각하는 미국과 미국의 도덕적 위신은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는 것이 또 다른 이슈입니다. 그리고 현재 그들은 미국 하면 ‘아부 그라이브’, ‘관타나모’처럼 미국인에 의한 아랍인 학대를 먼저 떠올립니다. 이 전쟁에서 기대한 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불행히도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어떤 식으로든 ‘미국의 힘’을 약화시킵니다.


이와 비슷하게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대북 정책을 세울 때, 미국은 핵무기 문제보다도 북한의 인권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비핵화를 촉진시키는 것은 독재 하에서 박해를 받으며 살고 있으면서도 핵무기는 강대국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는 북한 인민들을 김정일 독재에 묶어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핵 이슈는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있어 최우선입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권문제를 먼저 제기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현명한 판단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핵무기가 미국의 우선 관심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북한이 다른 로켓이나 재래식 무기를 수출했던 것처럼 핵무기 수출을 시작한다면 이는 미국에게는 매우 위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북한의 핵무기는 이라크보다 훨씬 테러리스트들의 손 안에 들어갈 확률이 높습니다. 어려운 기아 상태에 놓여 있는 북한에 있어 핵무기 수출은 매우 유혹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 대통령이 북한 핵무기 문제를 최우선 과제에서 제쳐놓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가끔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있어 최우선 과제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들이 세계민주화 문제를 강조해왔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파키스탄이 중급의 핵보유국가가 되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핵제조 기술을 다른 나라에 파는 것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파키스탄은 미국의 반테러리즘 캠페인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어떻게 이들 관계를 정당화 할 수 있겠습니까?

부시 대통령은 자유의 확산이라는 매우 이상주의적 아젠다를 제시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미국이 특히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그리고 키르기스스탄 등 모든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협조가 필요했으며, 이들 국가들이 아프가니스탄을 움직일 수 있는 기지역할을 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들 국가들은 다양한 형태의 독재국가들로서 우리가 확신하는 이상이 뿌리내리기를 원하는 곳입니다. 반면 이들 국가가 민주화된 나라는 아니지만 우리는 이들의 협조가 실질적으로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런 모순으로 이끌고 있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매우 가정(假定)적인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반테러리즘 캠페인에 협력하며 이라크에 군대를 파견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미국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저는 미국이 그런 시나리오대로 북한과 협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핵문제는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어쨌든 테러와의 전쟁에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여기에 절충안이 존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진짜 문제는 6자회담에 있습니다. 만약 미국이 신중히 교섭을 시작한다면, 이슈 중 하나는 핵원료 유출을 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협약일 것입니다. 이것이 미국의 목표가 될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실질적 절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6자회담과 관련한 교수님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나토와 같은 조직을 구성하기 위해 어떻게 5개의 나라가 공조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확실히 나토와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소련연방과 미국, 냉전 전의 동서유럽을 아울렀던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에 가깝습니다. 중국의 공조가 있는 나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지역에 대한 중국의 관심이 미국과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만약 북한이 6자회담에 나서기를 계속해서 거부한다면, 북한을 제외하고 회담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당사국들 중 하나이지만 이 지역에는 다른 이슈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동북아시아의 안보를 논의하면서 북한의 문제는 동북아시아의 많은 다른 이슈들 중 하나로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동북아시아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우려되는 점은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민족주의가 부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 세 국가는 서로에게 화가 나 있습니다. 이는 건전한 상황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저는 현재 이들 세 국가 간에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긴장감을 진정시키기 위해 다른 메커니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있어 OSCE는 다소 생소한 기구입니다. 이에 대해 좀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이 기구는 냉전의 마지막 시기에 있었던 헬싱키 협약에서 탄생하였습니다. 헬싱키 협약에서 미국은 세계대전 후의 소련에 의한 유럽의 분할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으며, 답례로 소련은 인권기준을 준수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인권준수 과제 등을 세웠으며,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는 공산주의자들의 유럽 장악을 비준한 것이라며 비판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종국적으로 이 협약은 옵저버들의 네트워크를 이뤄냈으며, 인권과 관련된 부분을 냉전 후에도 지속시켰다고 생각합니다. 현재까지도 이 기구는 존재하고 있으며 선거를 감시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기구는 발칸반도의 충돌시기 깊이 관여하였습니다. OSCE는 이 지역 국가들 간의 안보 문제를 다루는 기구의 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구는 동맹 체제는 아니며, 몇 가지 점에 있어서는 서로가 경쟁적이기도 합니다.


안보문제보다는 인권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의 협력적 메커니즘을 요구하고 있는 북한인권법이 생각납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닫힌 국가입니다. 군사적 수단을 동원하지 않고 비폭력적으로 김정일 독재정권을 종식시킬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글쎄요. 이에 대해서는 저보다는 당신이 더 잘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주목하는 것은 이들 지배 그룹 내에 분열이 있거나 권력 내에 통치를 유지할 수 있는 비밀 세력이 존재했을 때 대부분의 독재정권은 종말을 고한다는 것입니다. 이들 세력이 등장한다는 것은 정권에 취약점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북한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 못해서 더 이상 언급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김정일 정권 후, 북한에 자유민주주의를 건설하는 데서 직면하게 될 가장 어려운 도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매우 엄청난 도전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약소국인데다가 보다 많은 식량과 사회적 기본 시설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을 제공할 준비가 된 한국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이점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힘만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의 많은 도움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 재건이라는 문제는 그 자체가 매우 미묘한 부분을 안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한국은 일본이나 미국이 북한 재건과정에 너무 깊숙이 관여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며, 한국은 최소한 이 과정을 자신들이 조절할 수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북한재건을 위한 국제협력 구조를 마련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한국의 통일에 대해 찬성을 하면서도 독일과 같은 갑작스런 통일에는 반대합니다. 현 한국 정부가 ‘햇볕정책’을 지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은 북한 내 점진적인 개혁과정을 거쳐 장기적으로는 통일에 이르는 연착륙을 원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권교체라든가, 김정일의 퇴출 또는 사망, 암살, 그리고 그 밖의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저도 급속도의 개혁은 문제해결을 매우 어렵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점진적 진행을 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런 결과를 산출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실질적으로 잘 처리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가 없군요.


민주주의는 세계의 모든 인민들을 위해 추구해야 하고, 그들에게 주어져야 할 세계적 가치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지난 5월 뉴욕 연설에서 민주주의는 오직 민주화를 원하는 국민들이 있는 곳에서만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어떤 국가에서는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도 내포합니다. 교수님 말씀이 민주주의는 세계적 가치에 적합해야 한다는 주장과 부합한다고 어떻게 증명하시겠습니까?

아마 모든 국가의 모든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원할 것입니다. 그들은 조직된 사람들이어야 하고 또한 민주주의 변화 과정의 주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변화의 과정을 통제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외부세계의 지원에 의지하기 시작할 경우 대부분의 민주주의는 실패합니다. 민주주의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국가 내에 조직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저는 민주주의를 원치 않는 몇몇의 국가에 대해서 논쟁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1인 1표를 행사하는 자유민주주의이론에 따르자면 유엔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미국과 중국 같은 거대한 국가가 영국처럼 작은 국가와 유엔 총회에서 똑같이 1표의 투표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엔이 보다 민주화되기 위해서 개혁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유엔이 개혁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단지 하나의 국가가 한 표의 투표권을 행사하는 법이 비민주적이어서가 아니라 유엔 내에 비민주적 국가들이 회원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중국, 미얀마 그리고 다른 비민주적 국가들처럼요. 또한 유엔 인권위원회는 시리아, 이란 그리고 리비아를 위원국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유엔의 룰은 상당히 엄격하기 때문에 안전보장회의를 확대하기 위한 모든 제안들은 최종적으로 별로 도움이 될 수 없으며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는 점입니다. 저는 우리에게 민주주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서로 상이한 조직들이 참된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자격조건을 갖춘 국가들 사이에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러한 국제적 기구가 유엔이 가지고 있는 기능들을 수행하는 것이 더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유엔을 개혁하는 것보다 새로운 국제기구를 만드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고 생산적이라고 보시는 건가요?

세계에는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한 다양한 국제기구들이 필요합니다. 유엔의 문제점 중의 하나는 모든 국가들은 세계 기구인 유엔의 회원이 되고 싶어 하고, 유엔이 세상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를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1999년에 설립된 폴란드 민주주의 공동체라는 기구가 있습니다. 이 기구는 동유럽,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에서 모두 참여한 최초의 새로운 민주주의 기구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기구는 보다 많은 지원과 기금을 확보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아랍세계의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구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변화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경험과 도덕적 권위를 가진 이들 참여 국가들은 유엔보다도 더 큰 신뢰를 얻고 있습니다.


20세기는 민주주의 시대였으며, 21세기에 와서 우리는 인류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진흥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민주화 확대에 대한 부시의 역설을 언급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수님께서는 2020년까지 세계는 민주주의가 성숙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가정 하에서, 민주주의는 인류의 행보를 위해 더 이상 매력 있는 주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인류역사에 있어 제기될 주요 행로는 무엇일까요? 이것이 역사의 종말인가요?

글쎄요. 첫째 2020년까지 우리는 민주주의에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보다는 더 걸리겠죠. 세계의 넓은 부분에 경제개발 문제와 같이 아직 해결되지 못한 다양한 다른 이슈들이 놓여 있습니다. 실제로 빈국에서 건강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세계에서 가난한 지역의 하나인 아프리카의 허약한 기반 위에서도 많은 민주주의 이행이 제공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어찌되었든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교수님께서는 (민주주의 이해에 있어서는) 단순히 앉았다 일어서는 운동이 아니라 우선하여 정치적 상승과정이 진행되고 다음으로 도덕적, 사회적 상승이 진행된다고 설명하셨는데요.

예, 그것은 저의 책 『대붕괴 신질서(the Great Disruption)』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사람들 간의 도덕적 동맹은 기술적, 경제적 변화 그리고 모든 종류의 변화에 의한 충돌이 생길 때 변함없이 필요한 과제입니다. 이는 사회가 변화하는 시기, 다른 기초를 근간으로 재설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만약 가장 서구적인 나라에서 살고 있는 한 가족을 보게 된다면, 페미니즘의 성장과 성(性) 혁명, 기타 많은 이유들로 인해 그 가족은 크게 충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한국은 매우 전통적인 가족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만 최근 몇 년 동안 이혼율이 급작스럽게 상승하였습니다. 이것은 현대화 등에 따른 많은 변화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종류의 이슈들은 경제개발에 부차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회에서 제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실지로 경제개발은 이러한 도덕적 속박을 느슨하게 합니다.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를 보면, 고대국가에서의 윤리는 하층민에 대한 그들의 도덕적 지배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보다 자유로운 상황에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윤리적 진보가 없는 것입니까?

다양한 방법으로 도덕적 진보는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도덕적 규범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그룹들 내에서 작용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룹 외의 사람들에게는 배타적으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에 그룹 밖에서 도덕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일본인은 그들끼리는 서로에게 매우 정중하지만 일본인이 아닌 사람들을 대할 때는 매우 무례하다고들 말합니다. 이는 인류 집단의 성장에 미치는 사람들의 행동반경을 주목하고, 종국적으로 인간의 평등과 인류애의 세계적 인식을 민주주의의 수단으로 삼았던 지난 몇 세기를 경과하면서 벌어졌던 많은 것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도덕적 진보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보다 작은 수준에서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반적인 진보와 함께 동시에 여전히 범죄, 무질서 등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수님은 미국과 구소련이 직면했었던 대립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재발할 것이라고 보십니까?

글쎄요. 가능성은 있습니다. 중국처럼 급속도로 힘이 성장하고 있는 나라를 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지난 19세기 유럽에서는 독일의 통합 이후, 모든 국가들은 독일의 힘이 중앙유럽에서 성장하는 것을 두려워하였고 이는 결국 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 아니며, 몇 십 년 동안 우리가 직면하게 될 커다란 과제의 하나는 중국으로부터 도전 받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 또는 다른 국가들과 충돌 없이, 성장하는 중국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만약 우리가 중국과 그러한 종류의 대결에 직면해 있다면, 그 대항의 특징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요? 냉전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대결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선 중국과의 충돌은 냉전을 이끌었던 이념적 문제가 아닙니다. 중국이 그들의 공산주의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중앙아시아나 아프가니스탄, 또는 모든 세계가 중국식 정부형태로 개종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전형적인 거대권력이며 일정한 민족주의적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직접적인 충돌은 대만문제에서 드러나겠지만 이를 넘어 중국이 한국이나 일본을 정복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미국과 구 소련 사이에 있었던 극도의 힘의 경쟁과 같은 이유는 아닐 것입니다.


한국 내 어떤 사람들은 중국이 개혁과 개방으로 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은 북한과 비교해 봤을 때 보다 진보한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 급진적인 민주주의 변화는 일어날 수 없으며, 북한은 우선하여 나라를 개혁하고 개방해야 합니다. 북한이 다소나마 국가의 변화를 꾀한 후 미국과 중국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북한은 현재의 상태에 머무는 것보다는 중국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좀 전에 말씀 드렸던 것처럼, 현재 극도의 독재정권 하의 북한이 이런 점차적인 개방을 이끌어 갈 수 있을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또한 남북이 분단되어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사실은 점진적이고 시간이 걸리는 개혁을 이루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정황과 함께, 사람들은 북한은 중국과 같은 변화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유입이나 중국식 개혁 개방의 촉진을 위해서가 아니라 북한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해 미국과 중국이 서로 협조를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미 이런 일들을 진행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국이 자진하여 북한을 압박할 거라고 기대하기는 요원하고 또 그렇게 할지도 자신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한 중국은 그들이 북한에 대해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급속도의 세계화와 ‘작은 국가 체제(small government regimes)’의 확산에 기인하여, 민족국가들의 역할이 다른 단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상승하는 국제기구, 쇠퇴하는 국가, 한쪽으로 비켜선 협력기구와 NGO. 만약 이러한 현상이 계속된다면, 국가와 민족국가에게 주어진 마지막 역할은 무엇이겠습니까? 민족국가의 현대적 의미가 사라질 지역에 세계화를 전파하기 위한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요?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민족국가는 다른 기구들이 할 수 없는 합법적인 법 집행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만약 당신이 법을 어겼다면 민족국가는 당신을 감옥에 가두기 위해 경찰을 보낼 수 있습니다. 다양한 국제 단체나 NGO들, 그리고 유엔은 이러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민족국가가 아닌 다른 체계에 이런 류의 권력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민족국가는 여전히 중요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유럽연합 헌법 거부는 사람들이 여전히 다른 공동체와는 매우 분명히 구분되는 사회의 통합체로서의 민족국가를 원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민족국가가 국민들에게 민족국가로서의 자부심을 주는 것을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계화가 언제든지 민족국가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민족국가는 대부분 법과 함께 존재하며 합법적인 권력을 사용합니다. 이외에 특히 사회안전이 보다 개방화되고 있는 이때, 민족국가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요?

여전히 국가적 틀 안에서 진행될 것입니다. 당신이 외국에 투자할 수 있다고 가정할 때, 당신이 재정적 법령에 의해 지불했음을 과연 누가 최종적으로 보장할 것이며, 만약 상대방이 당신을 속이고자 할 때 재정법령을 가지고 그로부터 막아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겠습니까? 저는 재정적 부분을 규제하고 그 법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민족국가의 능력에 의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는 민족국가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주어질 권력이 아닙니다.


세계 동맹(World confederation) 종류의 세계정부의 가능성에 대해서 어떻게 보십니까?

민주주의를 어떤 수준에서나 매우 효과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때문에 세계정부가 작동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세계민주화가 1인 1투표에 근거한다면 인도인이나 중국인들이 모든 것들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상식적인 국제 질서는 하나의 세계정부가 아닌 다양한 상이 기구들을 기본으로 하여 유지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 교수님은 세계정부는 별로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지금처럼 우리가 충분히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하는 세계정부를 가지고 있다면 이는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만약 이것이 효율적이었다면 이는 민주적이라기보다는 보다 전제군주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와 사회의 불평등이 야기될 때, 국가 내부의 불평등보다는 국가 간의 불평등이 보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수단의 어린이들과 미국의 어린이들은 그들 스스로 삶의 조건을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이 속한 국적에 의하여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불공정한 조건에 대해 누가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국가, 국제기구, 아니면 세계시민사회가 할 수 있나요? 선진국들의 정부는 도덕적 책임이 없을까요? 세계화는 이런 차별을 줄여나갈까요? 아니면 민족적 차이를 드러나게 할까요?

만약 세계화의 장점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국가라면, 개발과 불평등의 감소를 위해서 세계화는 매우 긍정적입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라고 할 수 있는 중국과 인도는 매우 꼼꼼히 세계화의 이점을 챙기고 있으며 또한 매우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하라 아래의 아프리카인데, 이 나라들은 혼란과 완전한 무질서에 빠져 있거나, 군벌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거나, 세계화가 제공하는 기회의 이점을 취할 수 없는 무능한 정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이 국제체제가 아닌 개별적 국가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국제체제는 위와 같은 상황에 놓인 국가들을 도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국가의 정부는 주요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전체로서 정부와 사회의 경우에는 한국의 경우처럼, 동아시아 국가들은 무역과 수출 등의 이점을 기꺼이 취하고 있고,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예를 보면, 정부 스스로 계속해서 시민들을 위한 책임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 정부가 위와 같은 역할을 위해 행동을 하고 국민들에게 책임감을 보여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봅니다.

(현재 북한 정부는) 나쁜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는 새로운 정부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 경우, 도덕적 책임을 가져야 할 나라들은 없는 것입니까?

다른 나라들이 북한 정부가 그들의 국민들을 위하지 않음으로 인해 생긴 나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한 사람입니다. 어찌되었든 그 상황을 벗어날 전략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좀더 실천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도덕적 비판은 외부 세계가 아닌 북한의 몫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몇몇 사람들은 전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영어의 역할로 인해 영어는 제2의 공용어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영어 공용화는 결국 모국어인 한국어를 약화시키거나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영어 사용이 어느 누구의 민족어를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사람들의 언어 사용은 그저 실천적인 문제입니다. 50년 내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언어 대신 중국어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