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30호 기념 인터뷰 - 민족주의와 평균주의를 넘어 세계로 나아가자
:: 김영환
본지 편집위원


<시대정신>이 통권 30호를 내게 되었다. 1998년에 창간호가 나왔으니 만 7년만의 일이다. 창간 이후 <시대정신>은 일관되게 ‘21세기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매달려왔다. 사상과 이념의 시대가 막을 내리던 그 시점에 <시대정신>은 오히려 새로운 사상과 이념 모색의 기치를 들었던 셈이다. 치열한 토론과정에서 <시대정신>이 정리한 21세기 인류의 진로 및 한국사회의 과제는 크게 세 가지였다. 세계민주화와 인류공동체, 한국사회의 자유주의 개혁, 그리고 북한의 민주화이다. 이번 호에서는 <시대정신>의 대표적인 필자 김영환 편집위원과 <시대정신>의 성과와 과제를 진단해 본다.


1. <시대정신> 통권 30호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1998년에 창간되었으니 어느덧 창간 7년째를 맞이합니다. 그 동안 21세기 진보운동과 이념, 한국사회의 당면 과제를 모색하고 토론하는 공간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시대정신>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를 짤막하게 정리해 주시죠.

<시대정신>은 현 시대의 본질적 성격과 그 발전방향을 정확하게 밝히고 그 진보적 길이 무엇이고 반동적 길이 무엇인지를 찾아내 현 시대 실천 활동의 과제를 설정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세계화’, ‘민주화’, ‘지식사회화’라는 방향을 찾아냈고 이를 중심으로 진보, 보수, 반동이 재편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현 단계의 인류발전에서 북한민주화가 매우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밝혀냈고, 속도만 빠르고 이념적으로는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세계화가 아니라 이념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이를 영어공용화나 FTA 체결이나 유엔개혁 등 많은 영역에서 구체화시켜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시대와 미래의 앞길을 헤쳐 나갈 철학적 무기로써 인간중심철학을 내세우고 이를 구체화했으며 자유주의의 이론적, 실천적 의의와 생활력을 증명하고 이에 기초한 많은 구체적 정책들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외부에서는 인간중심철학, 북한문제, 세계화, 자유주의, 세계민주화 등이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따로따로 다가올 뿐 그 사이의 통일적인 연관성은 잘 느끼지 못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시대정신>은 이 통일적인 체계를 잡아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의 하나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최근 교과서포럼 등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바로잡아 나가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도 그 일환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바로잡아 나가는 데 일정한 기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 <시대정신>은 ‘인간중심의 공동체사회’를 21세기 진보운동의 방향으로 제시하고 다양한 토론과 연구를 해왔습니다. ‘인간중심의 공동체사회’란 어떤 사회입니까?

우리가 말하는 공동체사회란 현재 사회 여러 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공동체운동이나 공동체사회론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현재 일반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공동체운동은 첫째, 복고적인 차원에서 과거 지역사회, 가족중심사회로 가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고 둘째, 현존하는 공동체를 소중히 여겨서 우리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삶을 다양한 방면에서 풍부하게 하자는 차원에서 제기된 움직임이 있고 셋째, 원래 공산주의에 반감을 갖고 있거나 공산주의의 실패에 실망한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공산주의와는 다른 다양한 형태의 연대운동(생산자협동조합운동, 공동주택운동 등)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각각의 운동들은 나름대로 긍정적인 측면들이 있겠지만 우리의 공동체사회는 이런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와 현재의 공동체들을 소중히 여긴다는 측면에서는 첫째, 둘째 주장들과 비슷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자아가 지역사회와 가족사회로부터 해방된 것을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러한 해방된 자아에 기초하여 사회발전을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첫째 주장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첫째 주장은 결국은 자유주의를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자유주의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본다는 데서부터 상당한 실천적 차이가 있습니다. 둘째 주장은 일종의 웰빙형 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의 삶을 매우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관점에서 관찰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측면이 많지만,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사회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우리의 공동체사회론과 당면한 웰빙의 한 측면을 이야기하는 둘째 주장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 주장은 극단적 자유주의를 경계하자는 것인데 그 취지는 이해가 가지만 자칫하면 자유주의의 본질적 정신을 침해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조심해서 접근할 필요도 있습니다. 셋째 주장들은 현존하는 사람들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정한 분석에 기초해서 접근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결국은 마르크스가 범한 급진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오류를 다시 범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공동체사회론은 인간에 대한 신뢰, 인간의 발전에 대한 신뢰에 확고히 기초하고 있지만 절대 현실적이지 못한 허황된 접근은 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현존하는 인류의 현실적 수준에 기초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지난 100여 년간에 걸친 객관적이고 계통적인 인간지능검사에서 인간의 지능이 지속적으로 높아져왔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인간의 지능이 높다는 것이 인간의 종합적 능력이 높다는 것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인간이 지속적으로 발전해왔음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한 단면입니다. 인간이 발전한다는 것은 자신을 통제하는 능력과 사회와 관계를 맺어가는 능력이 높아진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미국과 같이 외부에서 끊임없이 많은 사람이 유입되는 사회는 분석이 복잡하지만 북유럽과 같이 외부유입인구가 적은 나라들을 볼 때, 지난 100여 년 동안 사람들의 자기통제능력과 사회와 관계를 맺어가는 능력이 높아져 왔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공원에 지갑을 두고 누가 가져가는가를 보는 실험이라든지 청렴도 조사 등에서 뚜렷한 발전을 볼 수 있습니다.

준선진국인 한국을 보더라도 사회 곳곳에서 자율이 조금씩 확대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율이 이런 식으로 확대된다면 장기적으로 법치보다는 자율이 보다 더 중심적인 사회운영원리로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연대성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독립된 자아가 사회와 관계를 가져가는 것은 성공과 실패를 거치며 많은 굴곡이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본질적인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공동체사회론은 인간에 대한 확고한 신뢰, 인간의 이성에 대한 확고한 신뢰, 인간의 발전에 대한 확고한 신뢰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중심철학에서부터 출발했고 인간중심철학의 사유방법에 철저히 근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우리는 사실 지나친 이상주의와 급진주의에 의해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따라서 현실과 유리(遊離)된 이상주의나 급진주의를 가장 철저히 경계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의 주장들을 보면 지나치게 조심스럽다 싶을 정도로 현실과 조금이라도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주장들을 경계해왔고 세계의 발전이나 사람들의 발전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지나치게 앞서 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상주의와 이상은 다른 것입니다. 이상주의는 안 되지만 이상을 포기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현실에 기초한 올바른 이상은 우리의 삶과 실천, 사회를 훨씬 풍부하고 높은 질로 인도합니다.


3. 인간중심의 공동체사회를 만드는 방법은 무엇이고 공동체사회를 향한 현 단계의 과제는 무엇인지 지금까지의 토론과 연구 결과를 요약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동체사회를 만드는 방법에서의 핵심은 인간의 발전입니다. 인간의 발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관해서는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사회학, 심리학, 교육학, 미래학뿐만 아니라 수많은 학문들이 여기에 관여되어 있는데 아직 이 문제를 본격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광범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인데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더라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학교교육의 영역, 사회교육의 영역, 일반 사회정책의 영역, 법률운용의 영역, 형사정책의 영역 등 수많은 영역에서의 발전의 길이 때로는 독립적으로, 때로는 종합적으로 검토되어야 하겠지만 여기서는 정치 영역에만 국한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민주화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억압을 받는 북한과 같은 나라의 사람들을 해방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공동체사회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여러 측면에서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공동체사회는 국가권력이나 가족사회, 지역사회, 물리적 폭력, 기타 억압적인 사회제도 등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개인이 발전해 가면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절대적 전제는 자유로운 개인이며 자유로운 개인의 해방된 자아입니다. 북한과 같이 국가권력이 사람들을 극단적으로 억압하는 사회에서는 공동체사회의 씨앗도 생겨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현대사회는 세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단위가 되어 발전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도 자기들만 발전하겠다고 해서 절대 잘 될 수 없습니다. 북한과 같은 나라를 함께 끌고 가지 않으면 결국 심각한 장애에 부딪혀서 아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일정 정도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세계민주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며 북한과 같이 극단적 억압체제가 있는 나라들이 그 첫 번째 대상입니다.


4. <시대정신>은 20세기의 사상과 이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사상과 이념을 모색하고 그것을 기초로 세상을 해석하고 변혁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나름의 고민과 모색 끝에 대략적인 사상과 이념의 씨앗을 만들었고, 그것을 편의상 인간중심사상 또는 인간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으로 불러오고 있습니다. 인간중심사상, 인간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의 핵심 골자는 무엇입니까? 20세기 사상이념과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인간중심의 철학적 세계관의 핵심 골자는 인간을 중심으로, 특히 인간의 이성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차지하는 사람의 지위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세계가 발전하는 기본법칙을 규명하고 그 위에서 실천을 찾아나가자는 것입니다.

20세기의 사상이념은 마르크스주의를 빼면 특별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다양한 조류의 철학들이 있었지만 그 대부분은 그냥 철학으로만 끝났고 사상이념으로 발전하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대중적이고 실천적인 형태의 사상이념을 이야기할 때 마르크스주의가 압도적이었지요. 20세기의 마르크스주의자를 최소 2억에서 최대 7억 정도로 잡을 때 아나키즘 등 20세기 전반기의 준공산주의 성향의 사상들과 종교계열을 제외하고 그 이외의 다른 사상이념을 가졌던 사람들을 모두 합쳐도 그 1/5∼1/10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그 규모가 작습니다. 뉴레프트 같은 것이 있었지만 통일성이 적었고 또 마르크스주의의 아류적 성격이 강했으며 길게 지속되지도 못했지요. 그리고 네오콘 같은 것도 사상이념적 체계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그 수도 대단히 적지요. 20세기의 사상이념을 이야기할 때 마르크스주의 이외에는 뚜렷하게 언급할 만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인간중심철학이 북한에서 나왔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와 유사성이 있지 않느냐고 생각하는데 마르크스주의와 가장 대척점에 있는 것이 인간중심철학입니다.

19세기에는 주관적인 요소를 배제하기 위해 최대한 객관화시킬 수 있는 요소로만 연구하는 것이 주 사조였습니다. 마르크스주의도 그 영향을 받아서 인간의 주관적 역할을 최대한 무시하고 객관화시킬 수 있는 것들만을 중심으로 사회발전법칙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을 마르크스주의로 빨아들인 매력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인간중심철학과는 완전히 상반된 출발에 서 있습니다.


5.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과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무너졌습니다. 정권의 붕괴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민주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 사람도 있고, 전쟁의 아픔과 혼란만 가져다주었을 뿐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외부 사회의 개입으로 인해 독재정권이 무너진 이들 나라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겠는지요?

이들 나라에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외부 개입으로 독재정권이 무너지느냐 아니면 내부의 항쟁으로 독재정권이 무너지느냐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프리카의 몇몇 나라들은 내부의 시위 등 소요로 인해 독재정권이 무너졌지만 민주주의는 멀고 먼 상태입니다. 반대로 일본은 외부의 강제에 의해 민주화되었지만 지금까지 큰 문제없이 민주주의가 잘 정착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외부의 개입에 의해 민주화되었는지 아닌지가 결정적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민들의 교육수준, 의식수준, 민주주의운동에서 구심적인 역할을 해온 정치세력의 유무 및 그 수준, 문화적 종교적 연대성을 지닌 이웃나라의 민주화경험 등이 더 중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이러한 측면들에서 그렇게 아주 악조건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렇게 호조건도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이라크의 경우 후세인 정권을 타도하는 것은 쉽게 성공할 것으로 봤지만 일단 전쟁이 끝나면 아랍민족주의와 이슬람주의 때문에 심각하게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는데 시아파-수니파-쿠르드족의 알력과 대립관계 때문에 우리가 실제로 예상했던 것만큼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시아파-수니파-쿠르드족의 알력과 대립관계는 물론 이라크의 장래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측면이 많이 있으며 현재에도 부정적 역할을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현 시점으로만 본다면 충격을 흡수해주고 극단주의가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는 긍정적 역할이 훨씬 큽니다. 그리고 이라크 국민들의 삶도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습니다. 현재 매우 심한 실망감과 좌절감을 가진 소수 수니파를 어떻게 포용하는가 하는 과제와 국제 이슬람극단주의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 과제입니다. 국제 이슬람극단주의는 현재 이라크를 주 활동무대로 하고 있고 또 이라크전쟁 때문에 참가자가 빠른 속도로 확대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이라크 자체로 해결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수니파를 잘 포용한다면 국제 이슬람극단주의의 이라크 내에서의 기반도 크게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해 석유판매 등으로 인한 경제적 성과를 수니파를 포함한 모든 국민들이 골고루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이것이 관건입니다.


6. <시대정신>은 그 동안 낙후된 나라를 발전시키고 독재국가를 민주화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숙제이자 세계 진보운동의 실천과제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런데 낙후된 나라나 독재국가들의 대부분이 자국의 힘만으로는 민주화와 사회발전을 도모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들 나라의 민주화와 사회발전을 위해서는 외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보시는지요? 만약 외부 개입이 필요한 것이라면 어느 정도 수준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미국 군대가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민족적 동질성이나 연대성이 극히 약한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는 식의 외부 개입은 앞으로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극히 자제되어야 합니다. 이제 국가의 울타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지만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민족적 동질성과 연대성은 여전히 매우 중요합니다. 국제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이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들면서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것도 그들에게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민족적 동질성과 연대성이라는 매우 큰 무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혁명가들도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방향으로, 이러한 전략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아랍권에서는 아랍인 중심의 민주주의 혁명 국제정치부대가 육성되어야 하며 블랙 아프리카(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외한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에서도 역시 블랙 아프리카인 중심의 민주주의 혁명 국제정치부대가 육성되어야 합니다.

현대 세계에서 정치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이슬람이 매우 중요한 조건으로, 매우 중요한 영향력으로 등장했는데 이 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슬람을 배제하거나 배척해서는 정치와 경제를 포함해서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슬람을 배척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먼저 이슬람과 이슬람 신자들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을 가져야 합니다. 민주주의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일부 인사들의 경우에는 사석에서 이슬람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인사들이 만약 자신의 생각과 태도를 적극적으로 고칠 생각이 없다면 국제민주주의 혁명전선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민주주의혁명가들 중에 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슬람을 자기 종교로 받아들이는 것도 적극 권장합니다. 혁명가들이 먼저 대중에게 다가가야지 혁명가들이 먼 곳에 앉아서 대중에게 다가오라고 호령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확고한 진리입니다.


7. 세계화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꾸준히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세계공동체를 통합, 관리하는 세계연방정부나 세계연방의회와 같은 형태의 조직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만약 현재와 같은 속도의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미국-중국 갈등 등이 심각해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최소 20년, 최대 40년 이내에 UN 혹은 UN을 대체하는 조직이 준연방정부의 역할을 할 것으로 봅니다. 이 준연방정부가 보다 높은 수준의 연방정부(19세기 초중반의 미국 정부 수준)로 발전하는 것은 점진적으로 될 수도 있고 또 갈등을 겪다가 어느 시점에 급격히 추진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추가적으로 30∼50년 정도가 더 걸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측은 특별한 다른 변수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다른 변수가 늘 도사리고 있는 실제 현실 속에서는 이보다 훨씬 빨라지거나 이보다 훨씬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8. 현재 UN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세계화가 지속적으로 진전될 경우, UN이 꾸준히 개선되면서 자연스럽게 세계연방정부로 변모할 가능성이 높습니까? 아니면 UN의 지위와 역할이 점차 약화되면서 ‘세계민주국가연합’과 같은 형태의 세계연방정부의 맹아가 새롭게 형성될 가능성이 높습니까? 아니면 현재로서는 예측이 어려운 것입니까?

UN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는데 그 하나는 중요한 문제에 대한 각 국의 결정권한이 그 국가의 인구, 국력, 영향력, 기부금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여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자체 정치부대가 없어 UN의 권위를 훼손하는 일들에 대해 효과적인 정치대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셋째는 초강대국들이 UN을 구심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세계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주요 국가의 지도자들은 아직까지는 세계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이것은 결국 그 나라 국민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주요 국가 국민들이 아직까지는 세계화에 대한 의식이 불확실하고 의지도 약하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조건에 있는 것입니다. 설사 세계화에 대한 의지가 상대적으로 강한 지도자가 있더라도 UN을 중심으로 세계화를 추진하겠다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UN이 과연 그러한 정치적 구심으로서의 지위를 가질 수 있을까? 사실 이 문제는 우리도 상당히 의심스러운 측면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현 시점에서 UN을 없애고 새로운 대체기구를 만드는 것은 문제를 훨씬 복잡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정세가 질적 도약을 요구하는 시점에 가서는 UN이 구심이 될 가능성과 새로운 것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각각 40% 대 60% 정도쯤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9. 독도문제,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 고구려사 문제, 과거사청산 문제 등을 통해 우리 사회 민족주의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한국사회 민족주의의 현주소를 진단해 주시죠. 아울러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세대는 어떤 방식으로 민족주의를 다뤄야 하는지도 말씀해 주시죠.

민족주의는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의 급속한 발전을 가능하게 한 동력 중 하나로써 상당히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물론 부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대단히 많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역할이 더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민족주의가 20∼30년 전에는 한국사회의 분열보다는 통합에 더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보지만 지금은 통합보다는 분열에 훨씬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민족주의에 기초한 친일파 척결이니, 맥아더동상 철거니 하는 것들 때문에 한국사회의 분열이 얼마나 심화되었습니까? 그리고 지금과 같은 세계화된 시기에 그런 배타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면 우리 자신의 손해가 매우 심각합니다. 20∼30년 전에는 한국사회를 후진적인 국가로 봤기 때문에 웬만한 것은 봐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보기 때문에 상식적 수준을 넘어서는 배타적인 태도는 바로 그 역풍을 맞게 되고 심한 손해로 귀결되게 됩니다. 단순한 일회적인 손해로 그친다면 그 손해가 비록 심하더라도 참을 수 있겠지만 일회적인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사람들의 민족주의적 잠재 성향만 따져본다면 20여 년 전에 비해 지금은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소득이 늘어나면서 그러한 잠재성향은 줄어들게 되어 있지요. 그러나 20∼30년 전에 사회를 주도했던 사람들은 일제시대와 해방전후사를 직접 경험한 사람이거나 최소한 가까운 가족이나 선배, 교사 등으로부터 그 시대에 관해 많은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편파적인 생각을 갖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일제시대와 해방전후사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20대의 대부분과 30대의 상당수는 부모나 교사나 선배로부터 직접적이고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도 없었습니다. 대체로 책이나 매스컴에 나오는 극히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이야기만 듣고 자랐습니다. 이 때문에 민족주의가 현실과 완전히 유리된 이데올로기로 되어버려 오히려 그 위험성이 더 높아졌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19세기 말부터 해방전후사까지의 근대사를 정확히 알리는 것입니다. 이 시기의 역사를 지금 젊은 세대의 대부분은 역사 그 자체로 먼저 보지 않고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라는 거름종이를 갖다 놓고 그 거름종이를 통과한 역사만 보도록 강요받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역사를 역사 그 자체로 볼 수 있는 눈을 기르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민족과 민족주의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알리고 세계화 시대의 민족의 의미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도록 해야 합니다.


10.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전후해 세계적 차원에서 폭발적인 반전평화운동이 일어난 바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도 강렬한 반전평화운동이 있었는데, 이 운동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사회발전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십니까? 아니면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십니까?

반전평화운동이 그 자체로 별 의미가 있을까요? 미국을 고립시킬 목적으로 하는 운동이라면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평화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그런 운동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평화라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염원이겠지만 평화를 실현하는 길이나 방법이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으로 대중이 참여하는 운동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전쟁이냐 아니냐를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선출하는 대중이긴 하지만, 대중이 선거가 아닌 운동의 형태로 안보나 전쟁, 평화와 같은 극히 복잡하고 전문적인 문제에 일일이 개입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라크 전쟁 당시의 반전평화운동이 활발히 일어나던 시점은 이미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많은 구체적인 것들이 결정되어 되돌리기가 극히 힘든 시점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그런 운동을 했다는 것은, 그리고 전쟁이 이미 시작된 이후에도 그런 운동을 계속했다는 것은 그것이 전쟁을 막을 목적보다는 미국을 고립시키거나 전쟁 자체에 정치적 타격을 줄 목적이 더 앞서지 않았나를 의심하게 합니다. 반전평화운동과 같은 것은 경우에 따라서 상대방에게 정치적 타격을 줄 목적으로 채택할 수 있는 전술의 하나라고는 생각되지만 운동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11.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대표적인 문제점과 개혁과제를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주시죠.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대표적인 문제점 혹은 개혁과제는, 첫째 과도한 배타적 민족주의, 둘째 과도한 평균주의, 셋째 포용력의 부족입니다.

과도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과거사 문제, 맥아더동상 철거 소동, FTA나 교육개방에 대한 거부 정서, 외국 기업이나 외국 자본에 대한 거부 정서, 한미동맹이나 주한미군에 대한 거부 정서 등으로 나타나고 있고 이런 것들은 한국의 국익에 심각한 손실을 입히고 있습니다.

과도한 평균주의는 심각한 문제가 있어 개혁필요성이 제기된 지 십수 년이 지나도록 그냥 방치되고 있는 고교평준화가 대표적이고 그 외에도 서울대 죽이기, 강남 죽이기, 재벌에 대한 거부 정서, 부유한 사람에 대한 편견과 적대감, 부동산 보유와 거래에 대한 과도한 규제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 역시 한국사회의 정상적이고 역동적인 발전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포용력의 부족은 구체적으로 한국 근대사에 대한 포용력, 외국인 노동자 등 외국인 체류자에 대한 포용력, 다른 사상이나 다른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포용력, 다른 정치세력에 대한 포용력, 기타 이질적인 요소에 대한 포용력 등이 심각하게 결핍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가 한국사회가 시급히 고쳐야 할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12. 최근 한국사회에 자유주의운동이 일고 있습니다. 인류발전 역사를 보면 자유주의의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합니다. 현재 한국사회에 우선 필요한 자유주의운동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교육을 자율화하는 것입니다. 현 정부는 자율을 강조하는 듯하면서도 교육자율화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습니다. 정부가 대학자율화로 가겠다고 말한 지 십수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별로 대학자율화로 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다가 오히려 대학자율의 핵심적인 권리를 더 심하게 제약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학이 이 정도이니 고교를 비롯한 각급 학교에 대한 규제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학생선발, 교과과정, 수업시간, 방과 후 교육 등 여러 부문에서 규제가 매우 심합니다. 특히 학생선발의 경우 학교가 갖고 있는 권한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학생선발 규제, 즉 평준화는 극히 일부 국가에 국한되어 있으며 한국인의 교육수요가 많은 국가인 미국, 중국, 캐나다, 호주 등의 국가에서는 평준화를 시행하는 나라는 한 나라도 없습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정부가 한국사회 발전의 어느 특정 단계에 시행했던 정책을 새로운 발전단계가 도래한 이후에도 무리하게 계속 끌고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동산 보유와 부동산 거래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풀어야 합니다. 물론 부동산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되는 것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친 개입은 문제를 더 확대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지난 몇 십 년 동안의 경험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부동산은 가격이 오른다고 공급이 갑자기 확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동산 시장이 지나치게 얼어붙으면 공급축소-가격 재폭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 외에도 사업상의 필요에 따라 부동산을 처분해야 하는 기업이나 개인, 혹은 사업상의 필요에 따라 부동산을 취득해야 하는 기업이나 개인에게 큰 손해와 불편을 주어 경제활동에 미치는 부작용도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금 문제도 큽니다. 한국의 세금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많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사회민주주의의 터널을 건너온 나라들과 한국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한국의 경우 각종 준조세를 더하고 병역의무를 세금으로 환산할 경우 세금 그 자체도 결코 적지 않습니다. 2003년을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20.4%였고 미국은 18.6%였으며 일본은 15.9%였습니다. 아직 사회민주주의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없는 독일이 21.5%였습니다. 한국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준조세를 제외하더라도 병역의무를 세금으로 환산한다면 독일보다 높은 수준을 보일 것입니다. 조세 부담이 큰 것도 문제지만 재산관련 세금 비중이 지나치게 큰 것도 문제입니다. 200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전체 세수 중 재산관련 세금 비중은 11.8%로 OECD 평균인 5.6%의 두 배를 넘었고 OECD 회원국 중에서는 상위 두번째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지금 재산 관련 세율을 계속 올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는 서울대 죽이기, 강남 죽이기, 재벌 죽이기, 부자 죽이기 등 일련의 죽이기 시리즈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 사회의 자유로운 개인을 여전히 국가의 종속물이나 국가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의 발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계화된 현대사회에서 부자를 적대시하는 국가는 결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은 지금 대부분의 나라 지식인들과 정부에서 잘 알고 있는 일반화된 이야기입니다.


13. 이른바 386 민주화운동 세대의 영향력이 빠른 속도로 커져왔습니다. 이들의 영향력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인지 궁금합니다. 386세대가 한국사회의 변화와 발전에서 갖는 의미도 함께 평가해주시죠.

386 이전 세대나 이후 세대는 세대로서의 집단적 정치경험, 공통의 강력한 정치의식운동, 세대 결속력 등이 비교적 약합니다. 특히 386 이후 세대는 정치적 관심이 지나치게 낮고 정치적 견해가 뚜렷하지 않아 정치의견에 논리적 일관성이 없거나 쉽게 바꾸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386세대는, 특히 80년대의 학생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정치권, 법조계, 언론계, 학계, 관계, 경제계 등 사회 곳곳의 주요 일꾼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치적 의견을 뚜렷이 밝히는 데 익숙하고 정치적 의견을 수렴하는 데도 능력이 있으며 세대 내의 동질성을 여전히 강하게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특정 시점에 강한 결집력을 보일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 시점만 놓고 본다면 386의 지지 정당이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노동당으로 뚜렷이 3분되는 현상이 강해진 것에서 볼 수 있듯이 386세대가 통일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당분간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1989년의 동유럽 사회주의 붕괴로부터 출발한 386의 보수화 경향이 최근에는 질적인 변화를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뚜렷한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현 정부에 대한 실망이 여기에 매우 큰 박차를 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386세대의 본질적 세계관은 쉽게 변하지 않고 여전히 민족주의적 경향이 강하며 자신들이 갖고 있는 이런저런 기득권에 대한 애착이 있어서 여전히 많은 혁신이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386세대는 프랑스나 독일의 68세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우리가 대학에 다닐 때 서울대학교 82학번 중에서 단 한 번이라도 지하서클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2,000명 정도로 추산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규모인데 그 이념적 편향을 제쳐놓고 이야기할 때 이는 세계정치사와 세계사회운동사에서 극히 이례적인 것으로서 한국 근현대사가 갖고 있는 매우 귀중한 역사적 자산이자 자랑거리로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사람들이 계속 운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기에 형성된 세계관에서 크게 바뀌지 않은 채 사회 곳곳에 나가 사회주도세력이 되었습니다. 386은 교육계를 비롯해서 사회의 주요 포스트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 다음 세대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386을 적대시하고 배제하면서 한국이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386 중에서 여전히 사회주의 성향 혹은 친사회주의 성향을 보이는 사람은 10% 미만으로 보입니다. 민주노동당에 투표하는 386 중에서도 친사회주의 성향을 보이는 사람은 절반이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86세대를 그 이념적 경향 때문에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부정적인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386세대는 우리 사회의 매우 귀중한 자산이며 그 공과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줄 필요가 있으며 기본적으로는 한국의 386 이전 세대가 386세대를 적극적으로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86세대가 베이비붐 세대이고 세대 단결력이 강한 반면 포스트 386세대의 세대단결력이나 세대특징이 매우 약하기 때문에 386세대의 사회적 집권은 앞으로 20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386세대의 정치적 결집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그 정치적 결집이 어려울 것이고, 386세대의 대표정치성은 현 정부의 성격과 비슷한 것으로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386세대 중에 적지 않은 수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사회정의와 연관시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한데 이러한 잘못된 사고를 깨우쳐주지 않으면 이 세대가 집단적으로 은퇴할 시점에 이르게 되면 한국사회는 매우 심각한 사회복지 부담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14. <시대정신>은 창간 당시부터 김정일 정권 종식과 북한민주화를 주장해 왔습니다. 그로부터 7년이 흘렀으나 여전히 김정일 정권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정권의 존폐를 좌우할 만큼 강력했던 북핵문제의 압박이 최근 6자 공동합의로 인해 그 강도가 낮아졌습니다. 앞으로 김정일 정권의 기반을 크게 약화시킬 중대한 계기나 의제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입니까?

북핵문제는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곳곳에 불씨가 남아 있습니다. 다만 중국의 태도가 최근에 변했기 때문에 북핵문제를 계기로 한 북한압박은 이제 거의 물 건너 간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지난 몇 년 동안 거리를 두는 모습과 친근한 모습의 양면적인 모습을 동시에 보여 왔는데 최근에는 동맹으로서의 친근한 관계를 강화하는 모습입니다. 이는 북한민주화의 전도에 별로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입니다.

현재 노출되어 있는 계기들 중에 김정일 정권의 기반을 크게 약화시킬 만한 것은 뚜렷이 없습니다. 다만 북한의 개방이 진행되고 이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아진 조건에서 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적 압박이 강화된다면 북한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의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으로 보입니다.


15.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 남한이 할 수 있는 역할, 해야 할 역할은 무엇입니까?

북한은 외형적으로는 막혀 있지만 이제 이러저러한 통로로 외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취하고 있는 햇볕정책을 설사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절대 북한 인민에게 김정일 정권을 인정하고 지지한다는 인상을 주면 안 됩니다. 북한 사람들에게 있어 한국 정부의 입장과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지하에서 혁명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북한사회에 대한 불만과 남한에 대한 약간의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는 사람들, 사회 변화에 대해 기회주의적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들 등이 모두 한국 정부의 입장과 태도에 대해 민감합니다.

남한의 민간에서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다양하게 끊임없이 제기해야 하며 이를 매개로 한 국제연대를 활발하게 벌여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의 민주화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다양한 모임과 조직도 만들고 확대해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공개적으로 이런 일을 지지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비공개 방식을 통해서 북한인권운동과 북한민주화운동을 지원해야 합니다.


16. 중국이나 미국의 협조가 없이는 김정일 정권 종식과 북한의 민주화는 불가능한 것입니까?

김정일 정권 종식과 관련해서 어느 정도 예측과 계산이 가능한 변수는 김정일 사망과 같은 것입니다. 그 외의 변수들은 사실 예측이 큰 의미가 없을 정도로 우연적 요소에 많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절대적 협조가 있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중국과 미국이 북한민주화에 어느 정도 협조하더라도 김정일 정권 종식이 가능할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김정일이 살아있는 조건에서도 후계구도와 관련된 반란 가능성, 기타 알력관계에 의한 내란 가능성, 여러 우발적 요소의 복합에 의한 민중봉기-잔인한 탄압-재봉기 등의 가능성 등이 있습니다. 물론 현 조건에서 본다면 이러한 가능성이 그렇게 높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김정일에게 고도로 집중화되어 있는 권력을 제외한다면 국가로서의 제 기능을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어떤 계기에 의해 권력구조의 한 축이 무너진다면 매우 빠른 속도로 전체가 붕괴될 것입니다.


17. 북한민주화와 한반도 통일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북한의 민주화 없이도 한반도의 통일은 가능한 것입니까? 북한이 민주화 되면 통일의 장애물은 모두 제거된 것입니까?

북한의 민주화가 없으면 한반도 통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남한 측에서는 북한이 민주화되지 않은 조건에서도 통일을 하자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북한 측에서는 정치적으로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체제붕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을 우려해서 통일을 하자고 나서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겉으로는 통일을 외치겠지만 속으로는 어떻게 구실을 만들어서 통일을 피할까 하는 생각만 할 것입니다. 북한이 민주화되기 전에라도 통일에 적극 나서는 것은 북한을 궁지에 빠뜨리기 위한 정치적 공세로서의 의미는 있겠지만 통일 그 자체로서의 의미는 거의 없습니다.

북한이 민주화되더라도 통일로 가는 길에는 무수히 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남북한의 극심한 경제발전과 사회발전의 차이, 남북 간의 지역감정, 막대한 통일비용, 중미관계를 필두로 한 복잡한 외교문제 등 결코 간단하지 않은 많은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장애물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조기통일을 마음먹는다면 조기통일을 추진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조기통일이 남북한 서로에게 유리한가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기통일은 장점보다 단점이 월등히 많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그렇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조기통일이 남북한 전체를 치명적 파멸로 몰고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기통일 문제에서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며 이 시점에서는 전 사회적으로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8. 한국사회의 개혁과 북한민주화라는 민족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선행 과제는 그것을 책임질 젊은 지도자들을 발굴하고 양성하는 것입니다.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마인드와 역량을 갖춘 청년 인재들을 만들기 위한 <시대정신>의 전략과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청년지도자들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포스트 386세대는 정치적 경험이 적고 조직활동 경험이 적으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스스로 헤쳐나간 경험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포스트 386세대는 정치적 지도자로 성장하기에는 386세대에 비해 상당히 불리한 조건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문제 등 복잡하고 어렵고 위험한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일선에서 헤쳐나간다면 충분히 새 세대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시대정신>은 실천조직이 아닙니다. 그러나 <시대정신>에서도 그 동안 정리된 이론들과 논리들을 교재의 형태로 재정리해서 제공하고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다양한 청년들을 위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토론 기회를 확대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시대정신>의 논조에 동의하거나 생각이 비슷한 많은 젊은 사람들을 모으는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찾아다녀야 하며 정의감이 넘치는 젊은이들이 모일 수 있는 다양한 계기들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